▲"두 세계 사이에서"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디오시네마
작가인 '마리안'은 21세기 초, 프랑스 전역을 뒤덮은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증가 문제를 취재하는 중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료를 들여다보고 인터뷰를 해봐도 실마리가 잘 안 풀렸나 보다. 그는 파리를 떠나 영불해협과 맞닿은 노르망디의 항구도시 캉으로 향한다. 자신을 아는 이가 없는 이 곳에서 경력단절 중년여성으로 가장해 직접 비정규직 취업생활을 감행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 중퇴 후 20여 년 간 특별한 취업이력이 없는 그에게는 비정규직 일자리 하나 얻는 것도 만만하지 않다. 실업자들이 구직을 위해 드나드는 취업센터에 출입하며 마리안은 이력서를 등록하고 일자리 관련 교육을 받는다. 그런 가운데 얼굴이 익숙해진 몇 명의 동료들을 사귄다.
처음 마리안이 얻게 된 일자리는 방문 청소부다. 집안 청소야 해본 일이라 가볍게 생각했지만 이건 차원이 다르다. 무관심하게 스쳐 지날 때는 알 수 없던 이 저임금 일용직 업무가 얼마나 강도가 세고 숙련된 노하우가 요구되는지 마리안은 몸으로 겪고 나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성공한 작가로서 언제나 할 말은 하고 살았던 그는 부당한 요구에 대거리를 하다 고객 불만족 신고를 당하고 사장에게 말대꾸하다 즉석에서 해고당한다. 기가 막히지만 정체를 숨겨야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청소부 일을 위해선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데 차가 없다. 선배 노동자의 배려로 중고차를 얻고 나서야 일자리 선택지가 넓어진다. 차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라는 걸 알게 된 마리안이다.
취업알선기관에 재차 구직활동 차 방문한 마리안에게 센터 직원은 차갑게 대한다. 그의 실체를 파악한 것이다. 당신의 취재 때문에 당장 하루 일자리가 절박한 누군가는 희생당할 수 있다는 직원의 지적에 마리안은 그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답한다. 그리고 센터에 드나들며 얼굴을 익힌 '크리스텔'에게 카풀을 제공하는 대신 그가 일하는 곳에 추천해주길 요청한다. 둘은 함께 크리스텔이 3교대 파트타이머로 일하는 곳으로 향한다. 영불해협을 왕복하는 카페리의 모항인 위스트르앙 부두다. 사람이 늘 부족해 일자리는 넘쳐나지만 견뎌내기 힘들다고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청소 일도 이제 좀 해봤으니 감당할 만하다 생각했지만 이곳의 노동강도는 차원이 달랐다.
거대한 카페리가 정박하자 승객들을 토하듯 뿜어낸다. 정박장으로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엔 트렁크를 끌고 배낭을 맨 여행객으로 가득하다. 반대편엔 가파른 계단으로 마리안 일행을 포함한 청소노동자들이 재빠른 걸음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배가 정박한 1시간30분 동안 객실 청소를 마쳐야 한다. 1척당 평균 230개 객실이 있다. 보통석은 침대 4개가 한 방에 들어간 도미토리 구조다. 방 1개 당 4분 내로 청소를 마쳐야 한다. 작은 방인데도 화장실이 용케 들어가 있어 거기까지 다 치워야 한다. 침대 1개 당 시트를 갈고 깔끔하게 모서리 각 잡는데 소요시간은 1분30초다. 2층에 있는 침대를 갈기 위해선 까치발을 하고 근육을 풀가동해야 한다. 마리안은 왜 고참이 1층 침대, 차라리 화장실 청소가 낫다고 하는지 자기 몸을 혹사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고단한 일에 지쳐 쓰러지는 나날이 계속되지만 마리안은 차츰 자신의 동료들과 교분을 쌓아간다. 청소 팀은 그 자체로 작은 세계를 구성한다. 그곳에는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싱글 맘 등 주류사회에선 가려진 이들로 가득하다. 통근 버스를 타고 함께 이동해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듯 속도를 맞춰 전쟁 같은 선실 청소를 진행하고, 막간에는 새로운 동료를 환영하고 떠나게 된 이들을 송별한다. 중년의 마리안은 애 셋을 키우는 싱글 맘 크리스텔, 이제 갓 성년이 된 '마릴루'와 함께 어울리며 친분을 공고히 한다. 크리스텔은 특히 마리안과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청소를 마치고 나오던 일행은 점퍼를 두고 온 바람에 함께 찾으러 갔다 셋이 함께 그만 페리에서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난감해졌지만 어차피 못 내릴 바에 이들은 청소작업 중 훤하게 꿰게 된 승선상황을 이용해 비어 있는 일등실에 잠입한다. 호텔을 방불케 하는 룸서비스 샴페인과 디저트를 즐기며 바캉스 온 것처럼 셋은 신나하지만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아왔던 구름 위의 환경 때문에 마리안의 정체가 탄로 날 위기에 처하고 만다.
좌우의 날개로 나눠 구현된 원작과 영화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