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상은씨(자료사진).
연합뉴스
그해 겨울, 그녀의 첫 앨범 곡을 써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되어 이상은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의 소속사 사무실에서 서로 마주 앉아 대면하게 된 순간, 그녀는 내게
"저~ 뭐라고 불러야 될지. 선생님이라고 해도 되나요?"라며 쭈뼛거리는 것이었다. 내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니 곧바로 "선생님 반갑습니다"라며 거침없이 인사를 했다. 나는 그렇게 그녀의 아픔과 만나게 됐다.
노래를 하는 사람이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 연기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보통사람들보다 더 많은 아픔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팔자나 숙명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을 것 같은 예술인들의 삶 속에 항상 맴돌고 있었을 숙명 같은 아픔을 그녀도 상당 부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그녀는 언젠가 노래 연습 중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저는요. 열쇠를 집어넣어 오른쪽으로 돌렸는데 문이 안 열리면 후회 없이 왼쪽으로 돌릴 거예요."
그 말에 담긴 그녀의 꿈은 쉼 없이 돌고 있었다.
강변가요제 대상 수상 이후, 수십 명의 음반 제작자, 기획자들이 그녀에게 엄청난 조건들을 제시하며 집요하게 손을 뻗쳤다. 그리고 금전적 상혼이 그녀의 꿈과 사랑에 많은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녀에게 다가온 성공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혼란을 가져왔고, 그 이기적인 다툼들은 그녀가 지니고 있던 소박한 음악의 꿈을 무참히 짓밟아 버릴 수 있는 큰 힘을 갖고 있었다.
1집 음반을 낸 이후 하루도 쉴 새 없이 스케줄에 끌려 다니던 인기가수의 일상에 지친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뉴욕으로 날아가 버린 것은 열쇠를 넣고 오른쪽으로 돌린 문이 열리지 않았기에 후회 없이 왼쪽으로 힘차게 돌린 용기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진솔한 음악과 그녀의 삶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