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이삭이 주연으로 출연하고 음악감독을 맡았던 영화 <다시 만난 날들> 스틸컷
㈜영화사 오원
홍이삭의 모습은 지금을 살아가는 여느 청년들과 다르지 않다. 휴학을 하며 인턴 생활을 하지만 취업을 못해 졸업이 미뤄지는 대학생들, 100군데가 넘는 곳에 이력서를 넣지만 번번이 서탈(서류탈락)에 무너지는 취준생들, 하루종일 좁은 방 안에 틀어박혀 합격의 이름만 바라보는 공시생들, 아예 구직을 단념한 취포자들.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이들은 어떤가. 언제 다시 세상으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불안함 속에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지만 회사 사정으로 입사가 취소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인생의 여러 관문 앞에서 패배자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춘들은 점점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고립된다. '꿈을 좇는다'는 건 사치가 된 지 오래다. 불안정한 세상에서 결혼은커녕 연애할 힘조차 없는 구겨진 마음들.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삶을 이어가는 무수한 58호 가수가 우리 옆에 있다.
어디 청년들뿐이랴. 나 역시 몇 년째 이런저런 글들을 쓰며 공모전에 도전 중이지만 번번이 쓴맛을 보고 있다. 그때마다 "난 될 거야. 될 때까지 쓸 테니까"라고 쿨하게 넘기지만 이러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멈출 수 없는 건 쓰는 게 좋아서다. 글을 쓰면서 나는 존재를 확인한다.
홍이삭의 노래 중에 유독 현실의 벽 앞에 선 듯한 마음을 노래하는 곡들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런 까닭이다. 힘에 부치는 상황에서도 그는 꿋꿋하게 마음을 지키며 자신과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있는 그대로 사는 게 쉽지 않아
원한대로 흘러가는 얘긴 없는가 봐
오늘도 방에 앉아 나를 읊어 본다
(중략)
흘러가는 시간 돌이켜 보면 너를 위한 의미가 되고
헤매는 수많은 별들이 제 위치를 찾듯이
잊혀가는 어제는 반짝이는 별 같아서
밤이 깊어질 때 더욱 빛나
-홍이삭의 자작곡 <별 같아서> 중에서-
밤이 더 어두울수록 별은 빛난다. 우리가 어둡고 힘든 시간을 지날 때가 가장 빛나는 순간일 수 있고, 빛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는 희망을 그는 노래한다.
이렇게 홍이삭의 노래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공감을 전한다. 나는 그에게 빚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누군가가 힘겹게 걸어온 길을 그저 즐기고 누리는 것만 같아서다. 그리고 고마웠다. 꿈을 따라 버티고 버텨 여기까지 와 주어서.
누군가의 노래가, 마음이, 삶이 다른 사람에게 닿는 것. 받은 마음을 보답하고 싶어 응원하는 것. 생면 부지의 남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 그 모든 과정은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답다. 삭막한 세상에서 음악과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힘이란 건 바로 이런 걸 테다.
이쯤 되니 나에게 '싱어게인'은 더 이상 가수들이 유명가수가 되고자 경쟁하는 오디션이 아니다. 자신을 '상한 우유'같다고 이야기했던 참가자가 경연에서 힘을 얻고 조금씩 회복되는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성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끝이 반드시 해피엔딩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불어 지금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모든 58호들의 이야기도 그러하기를 함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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