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상에서 공동 구매를 위한 모금을 진행하는 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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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양상의 K팝 시장에서 앨범은 이제 더이상 음악을 듣는 매체로 기능하지 않는다. 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는 4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CD나 바이닐, 실물 음반이 이제 음악을 듣는 매체의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아티스트를 지지하고, 해당 아티스트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현물에 가깝다"고 짚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포토카드나 앨범 세트를 맞추기 위해서 앨범을 중복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K팝 팬덤들 사이에서는 (좋아하는 가수가) 차트 인(IN)을 꼭 해야하고, 시상식에도 올라가야 하는 등에 대한 인정욕구나 경쟁의식이 분명히 있다. 요즘은 K팝 가수들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 것도 경쟁이 된 상황이라, 차트에 오르려면 음반 판매량이 많아야 한다. 이런 것들이 앨범 구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도헌 평론가)
소속사들은 이러한 K팝 앨범 시장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 JYP는 8일 <오마이뉴스>에 서면으로 "글로벌 K팝 팬덤간 여러 아티스트를 두루 좋아하는 문화가 음반 성장 시장을 주도했다고 생각한다"며 "해외 시장이 커지는 건 업계 모두가 환영하는 일이다. 다만 시장의 성장이 가능하도록 비지니스 전략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 IP 본연의 가치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여러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K팝 특유의 앨범 중복 판매 전략과 충성스러운 팬덤 문화는 이제 세계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도헌 평론가는 "2010년대 중후반부터 K팝이 북미 시장에서 인기를 끌면서, 오히려 이런 부분들이 역수출되었다. 테일러 스위프트, 비욘세 등 미국 팝 스타들의 최근 앨범을 보면 K팝을 벤치마킹한 것 같은 부분도 많다. 예를 들면, 테일러 스위프트의 <미드나잇>은 바이닐 앨범 4개를 사야 뒷판을 이어서 시계를 만들 수 있다. 한 사람이 네 개를 무조건 사야만 하는 구조다. 미국에서 포토카드를 만들진 않지만 이런 것들이 포토카드와 다르지 않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1억 장이나 팔린 K팝 앨범이 결국은 K팝 아티스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됐다는 의미다.
"커뮤니티 기반의 소비가 주류 차트에 강력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줬다. 과거에는 대중적인 음악이 차트에 오른다고 생각했지만, 그 공식을 (K팝이) 완전히 비틀어버린 것이다. 커뮤니티를 만드는 가수가 성공한다. 이를 보여주는 가장 기초적인 지표가 음반 판매량이다. 음반이 이젠 음악을 듣기 위한 매개가 아니라 그 아티스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 것이다. K팝이 세계, 특히 서구시장에 영향을 준 것 중에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본다." (김도헌 평론가)
쓰레기로 버려지는 앨범도 문제
그러나 이렇게 구매한 많은 앨범은 결국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지난 2022년 11월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한 해에 버려지는 K팝 음반이 5700만여 장이라고 발표했다. 과포장, 중복 소비를 조장하는 소속사들의 관행으로 연간 100톤 이상의 폐기물이 버려진다는 것이다. 팬들 사이에서는 복지센터나 보육원 등에 기부하는 방법이 팁으로 공유되고 있다. 그러나 앨범 기부가 늘어나자, 센터 입장에서도 처치 곤란이 되는 경우도 많다. 2022년 한 복지센터 직원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제발 그만 기부해달라'고 호소하며 화제가 됐다.
팬사인회에 가기 위해 아이돌 앨범을 수백 장 이상 사 본 경험이 있다는 신모씨는 "팬사인회에 다녀온 후 앨범을 모두 분리수거 해서 버렸다. 예전에는 보육원에 보내본 적도 있지만 이제는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버릴 수밖에 없다. 앨범 구매를 하면서 앨범은 보내지 말아달라고 하소연 하는 경우도 있다더라. 미개봉 앨범의 경우 재판매 업체에서 가져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속사 관계자 A씨는 4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K팝 앨범으로 인한 환경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이미 하고 있다. 앞으로도 머지 않은 시기에 앨범 포장재, 구성 등을 생분해 비닐이나 수성 용지로 교체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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