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KBS2
과거의 한국인들은 그런 강감찬을 왜소한 체격과 연상시켜 기억했던 것 같다. 19세기말까지의 한국 역사학을 집대성한 단재 신채호의 글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연개소문을 그릴 때는 생김새가 호걸스러운 연개소문을 그려야 한다"고 한 직후에 "강감찬을 그릴 때는 몸집이 초라한 강감찬을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신채호는 역사학자가 역사만 공부하는 시대가 아닌,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함께 공부하는 문사철 시대를 살았다. 그는 자신의 역사의식이 성장하는 과정을 <꿈하늘>이라는 자전적 소설에 담았다.
이 책에서 그는 "강감찬이 드시는데 키는 불과 오척이요 꼴도 매우 왜루하지만, 두 눈에는 정기가 어리고 머리 우에는 어사화가 펄펄 난다"고 묘사했다. 문과 장원급제자 출신인 강감찬의 이미지를 위 <조선상고사> 서술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묘사했던 것이다.
한국전쟁 중인 1952년에 런던에서 출판돼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문학자 정인섭의 <한국의 설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은 "곰보 자국이 있는 추한 얼굴"이라는 말로 강감찬의 외형을 묘사한 뒤, 그런 모습을 갖게 된 원인을 "(강감찬이) 천연두의 여신을 불러놓고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얼굴을 최대한 추하게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고 "(천연두 여신은) 그가 원하는 대로 들어주기로 했다"는 말로 설명한다.
이처럼 강감찬의 외관 이미지는 KBS <고려거란전쟁>의 강감찬(최수종 분)과 다르다. 옛 한국인들은 그런 강감찬이 한민족을 이민족뿐 아니라 각종 해로운 것으로부터도 지켜준다는 관념을 갖고 있었다. 강감찬을 신격화시켜, 그가 온갖 나쁜 것으로부터 한민족을 수호해주리라는 관념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한국의 설화>에는 강감찬이 경기도 양주 지역의 호랑이떼를 퇴치했다는 설화가 소개된다. 호환마마의 호환(虎患) 때문에 괴로워하는 양주 주민들을 위해 그가 삼각산 꼭대기에 올랐다는 내용이 나온다.
설화 속의 강감찬은 그곳 노승을 불러놓고 "나의 고을에서 사라져야만 한다"며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고 타이른다. 실제로는 호랑이 왕이었던 노승은 강감찬의 명령을 따랐다. "(그 뒤) 지금까지 호랑이를 서울 근교 어디에서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고 위 책은 말한다.
<한국의 설화>는 강감찬이 경주 지방에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없앴다는 이야기도 소개한다. 개구리 소음에 시달리는 경주 주민들을 위해 강감찬은 현지에서 제일 큰 개구리를 불러다놓고 "이 저자에서 개구리 울음소리는 그만 없어야 한다"고 '협조'를 구했다. 그러자 그날부터 경주 시내가 조용해졌다고 한다. 호랑이왕에 이어 개구리왕도 조용히 타일러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도청(道淸)이라는 마을에서는 모기떼도 퇴치했다고 한다. 이때 구사된 방식은 다소 달랐다. 강감찬이 모기를 직접 타이르는 장면이 이상하다고 판단했는지, 이 설화의 창작자와 전파자들은 "종이에다 주문을 쓴 다음, 공중에 던졌다"는 스토리를 발전시켰다. 구두로 타이르는 방식이 아니라 주문을 써서 타이르는 방식이 사용됐던 것이다. 그날부터 도청 마을에서는 모기떼가 사라졌다고 <한국의 설화>는 말한다.
강감찬에 대한 대중의 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