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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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모성 신화, 자기몸 결정권, 사회적 금기 등 다양한 화두를 던진다. 커리어 선택이 죄책감으로 변하는 고정된 성 역할과 가부장적 분위기까지 담은 리얼함은 이 영화의 고유한 속성이다. 엄마이기 이전에 작가를 꿈꾸면 안 되는 걸까? 아이 보다 내가 우선이면 이기적인 걸까? 여성에게 모성이 당연하다는 편견은 보이지 않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여성도 사람이고 사람은 모두 다르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유지영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에서 흘러온 이야기라고 한다. 우연히 유지영 감독이 쓴 편지 형식의 글을 읽다 눈물을 쏟았다. 그 시절의 나와 함께해 준 시절 연인을 향한 고마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상대를 너무 사랑하면 보내준다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솔직함이었다. 비록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내 옆에 있었던 연인, 이제서야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서글펐다.
원제는 'Birth'다. 출산, 탄생이란 고귀한 단어가 다르게 쓰일 수 있음에 새삼 놀랐다. 재이가 임신 중 쓰다 고치기를 반복하던 원고는 세 번째 책 < Birth >로 탄생하게 된다. 아이를 원하지 않던 여성의 임신에 관한 아픈 이야기일 것이다. 출판 기념회를 마치고 돌아와 또다시 무언가를 끄적이는 키보드 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스크린은 암전 되고 엔딩크레딧과 함께 '탁탁탁'. 재이는 다음 이야기를 쓰는 중일 것이다. 그 어떤 OST, 쿠키 영상보다 비범하고 아련한 울림이었다. 혼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길을 걸어가더라도 조금은 덜 아파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재이를 토닥여주고 응원해 주고만 싶었다.
155분 러닝타임이 1시간 같아, 빨려 들어갔다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현실 커플의 일상생활은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불편한데 계속 보게 되는 마력이 상당했다. 작년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를 봤을 때와 비슷한 경험치였다. 여성이 여성의 이야기를 할 때 누구보다 여성이 공감할 수밖에 없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성평등, 경단녀, 자아실현, 출산과 돌봄까지 유려하게 담아낸 시선, 유지영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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