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칭 포 슈가맨"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판씨네마㈜
제2의 밥 딜런을 꿈꿨던 아티스트들의 흔해빠진 실패사례?
사실 <다시 만난 세계>와 유사한 사례는 세계 대중문화 역사에서 결코 적지 않게 발견된다. 심지어 요즘은 세계화 시대라 발달된 정보통신기술에 힘입어 그런 재해석이 국경을 가볍게 뛰어넘어 버린다. 마치 인공지능이 자신의 새로운 의미를 스스로 찾아내고 형성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물론 이런 돌출은 그저 우발적인 '밈'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다. 원래 의미나 뜻은 휘발되고 그저 낯선 깜짝 아이템으로 소모되다 생명력을 다하면 잊히는 식이다. 하지만 때로는 원작자가 바랐던 쓰임새와 활용법을 전혀 예정하지 않았던 곳에서 온전히 발견하는 경우도 '터진다.' 마치 본래 의도한 쓰임새가 자리를 엉뚱한 데에서 찾은 기분이다. <서칭 포 슈가맨>은 바로 그런 내용을, 시나리오에 의거한 극영화 줄거리라면 허무맹랑하다며 퇴짜를 맞았을 게 분명한 아이디어가 현실에 실재하는 이야기다.
1960년대 말, 디트로이트의 음반 제작자들은 우연히 뒷골목 술집에서 공연하던 무명가수를 발견한다. 당시는 인종차별에 맞서는 민권운동과 베트남 전쟁 확전에 대한 반전운동, 대안문화운동이던 히피세대가 세상을 뒤흔들던 시절이다. 밥 딜런이나 존 바예즈, 피트 시거가 활약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포크송은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고 투박해 보이지만 당대에는 가장 선도적인 음악 장르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모든 음반사들은 제2, 제3의 밥 딜런과 존 바예즈를 찾아 거리를 탐문하며 다녔다. 그런 가운데 밥 딜런과 미세하게 결이 다르지만 번득이는 가사와 가수에게서 풍겨오는 신비로운 이미지는 이 헤드헌터들을 대번에 사로잡았다. 대박의 예감이었다고 그들은 인터뷰에서 확고하게 회상한다.
그의 음악에 매료된 이들은 LA로 날아가 대형 레코드사를 설득해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전설적인 모타운 레코드의 경영진 중 한명이 새운 레이블에서 2장의 앨범을 1970년과 1971년 연달아 출시한다. 하지만 밥 딜런보다 뛰어난 음악성이라는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불가사의할 정도로 이 앨범들은 말 그대로 '폭망'했다. 음반시장에서 정말로 어떠한 반향도 얻지 못했다. 대중성에서 타이밍이 어긋났다면 작품성으로라도 기억되어야 할 텐데 정말이지 신기할 정도로 외면당한 당시 상황에 대해 누구도 원인을 설명하지 못한다. 수록된 노래들은 작품성이 뛰어났고, 제작사도 영세업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2장의 앨범은 심지어 그냥 프로젝트도 아닌, 최고경영자가 40년 후에도 생생히 기억할 정도로 공들인 기획이었다. 그런데도 극소수 지인들 외에는 신의 악의라도 깃든 것인지 처절하게 실패했다. 그리고 비극의 주인공이라 할 그 가수는 다시 어둠 속으로 잊혀갔다. 누구도 이후 그의 행방을 궁금해 하지 않았고 가수 또한 미련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 듯 보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된 '슈가맨'의 전성시대
이 정도라면 음반 산업에서 재수 어지간히 없긴 하지만 종종 일어나는 저주받은 사례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발생한다. 당시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정책 때문에 국제적으로 제재 대상이 되어 고립상태에 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 미국인 소녀가 이 무명가수의 (음반 제작회사 대표에 따르면 딱 6장 팔렸다던) 앨범을 비행기에 함께 가져간 것이다. 음악을 들어보니 무척 마음에 들었던 남아공 친구들은 음반을 구하려 했지만 어디에서도 구할 길이 없었다. 이들은 1장의 음반을 테이프로 복제해 돌려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슈가맨'의 전성시대가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된다. 원래 의도했던 성공모델과 시기와 장소는 판이하게 달랐지만 미국에선 얻지 못했던 위상과 성공을 획득한 것이다.
이 성공은 단순히 '강남 스타일'처럼 흥겹게 즐기는 곡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흥미롭다. 음반 제작자들이 '슈가맨'을 발견한 직후 기대했던 또 다른 밥 딜런의 탄생이 결국 이뤄진 것이다. 말도 문화도 환경도 다른 머나먼 외국에서 그것도 하필 말이다. 그리고 슈가맨의 음악이 주목받게 된 전후배경은 동 시대 한국 대중음악사와도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그저 음악에 소질이 있어 대중가수를 꿈꿨던 평범한 대학생 김민기가 정부의 문화검열로 인해 졸지에 저항가수가 되고, '아침이슬'이 민중가요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처럼, '뉴요커' 한대수가 그저 히피의 영혼으로 노래했던 '물 좀 주소'가 군부독재 치하 한국에서 재해석되던 것처럼 이 무명가수의 노래는 남아공의 진보적 청년세대들에게 그들만의 '아침이슬'이자 '물 좀 주소'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후 이 누구도 정체를 모르는 무명가수, '슈가맨'의 음악은 남아공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다. 신랄하면서도 시적인 풍자가 돋보이는 슈가맨의 포크 음악은 특히 백인정권의 극우 행보에 불만을 갖던 진보적 백인 계층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모두의 집에 슈가맨의 (불법복제)음반이 있었고 방송 신청곡에도 매일 올라왔다. 하지만 음악이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소개되는 일은 없었다. 가택수색을 해서 음반을 압수하진 못해도 눈에 뵈는 대로 수거되어 특정금지곡들은 LP에 스크래치를 내버리곤 했다. 당시 검열관이 회상하는 것처럼 슈가맨 VS 검열과의 승부는 인종차별정책과 백인독재정부가 끝장날 때까지 치열하게 이어졌다.
그렇게 슈가맨의 노래를 듣는다는 건 단순히 희한한 계기로 유명세를 탄 사례를 초월해 한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의 주제곡이 탄생하는 과정의 일부가 된다. 그런 가운데 사반세기 동안 꾸준히 롱런 히트하며 마치 국민가요처럼 인기를 얻기에 이른다. 해적판으로 쌓아올린 명성이지만 뒤늦게 정식 계약으로 앨범이 발매되어 수십만 장 이상 팔리며 스테디셀러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누구도 '슈가맨'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가 죽었다는 건 기정사실이 되고 온갖 출처불명의 사인이 언급된다. 공연 중에 분신자살을 했다느니, 권총자살을 했다느니 비극적인 최후에 대한 카더라 통신이 난무했다. 만인이 궁금해 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전설'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집요한 추적극의 결말
그렇게 슈가맨의 성공담은 그야말로 전설이 되었다. 하지만 더 진정한 전설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의 앨범이 워낙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었던 터라 불법복제 대신에 미국 레코드사에서 정식으로 지역 판권을 얻어 CD 발매를 준비하던 남아공 회사가 '슈가맨'의 팬인 음반업계 관계자에게 앨범 속지 해설을 의뢰한다. 신이 나서 해설을 작성하기는 했지만 정작 가수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는 게 도리어 의심스럽던 그는 (워낙에 평소 광팬이라 별명이 '슈가'일 정도였다) 역시 동일한 질문을 품고 있던 음악평론가와 함께 웹 사이트를 개설한다. 슈가맨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라도 알아보고자 수소문하기 위해서다. 바로 이 영화의 제목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 세상인데도 별다른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한참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답이 없자 그만 포기할까 싶던 중 우연히 운명처럼 작은 단서를 찾아낸다. 그 좁은 틈새를 비집고 파헤치듯 집념어린 탐구 끝에 마침내 '죽은' 슈가맨이 아니라 '살아있는' 슈가맨을 발견하고 만다. 바로 이 순간까지가 영화의 전반부를 구성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감동적이고 흥미로운 여정이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를 전혀 인연이 없던 인물이 고고학자가 되어 발굴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은 몇 해 전 반향을 일으켰던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와도 통하는 구석이다. 생전에 보모로 일하며 도시의 풍경을 그만의 관점으로 다뤘던 무명 아마추어 사진가의 유품을 우연히 경매로 넘겨받은 감정인이 신의 계시를 받은 양 동분서주하며 일면식도 없던 사진가를 세계에 소개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픽션을 초과하는 진실의 힘이 마구 전달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 음악계 탐정들, 거의 셜록 홈즈 급의 두 인물은 사기꾼이 아니라 정말로 노래를 부른 그 슈가맨이 팔팔하게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한다. 목소리만 듣고도 슈가맨이 맞다는 걸 직감했다고 한다. 감격한 이들은 공연을 기획하고 그를 남아공으로 초청한다. 하지만 실제로 가수와 가족들 역시 남아공에서 날아온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그들이 무슨 사기를 치려는 게 아닌지 상의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유년시절부터 삼대가 함께 흥얼거리던 당대의 명곡을 부른 가수가 그렇게 초라한 삶을 살 리가 없다는, 혹은 조국의 암흑기에 마치 한줄기 등불처럼 온당한 방향을 제시하고 격려해주던 시대의 송가를 부른 이가 정말로 우리와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전설이 멀쩡하게 살아서 디트로이트에서 일용직에 종사하는 말년을 보내고 있다는 걸 남아공의 팬들 누구도 심리적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고 한다. 수많은 추측이 난무하고 음반 홍보를 위한 사기극 아니냐고 의심했다던 음악평론가의 회고는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봄직한 해프닝일 것이다.
거짓말 같은 성공담 앞에 선 '슈가맨'의 자유로운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