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에 더해 < 1947 보스톤 >은 많은 사극과 시대극이 그렇듯이, 실화의 힘을 잘못 활용한다. 영화는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미국을 빌런으로 설정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영화 내용과 실제 사건이 충돌하며, 그 결과 영화의 감동도 덜해진다. 실제 사건을 왜곡하고 있으니 영화 말미에 나오는 자료 영상과 사진의 의미가 퇴색되고, 영화의 진실성도 약해진다.
실제로 영화 전반에 걸쳐 미국은 점령국에 가깝다. 미군병사는 무전취식에 항의하는 서윤복을 권총으로 위협한다. 미군정은 보증금과 신원 보증을 이유로 마라토너 삼인방의 보스톤행을 방해한다. 대회 측도 서윤복과 남승룡에게 태극기가 아닌 성조기를 달아야 한다고 고집한다. 심지어 미국의 마라톤 중계 아나운서는 한국선수들의 실력을 조롱한다.
실상은 달랐다. 서윤복의 회고록에 따르면 미군정 하지 장군을 비롯한 미국인이 보증금을 구해주며 대회 출전을 도왔다. 보스톤 마라톤 협회도 두 선수에게 태극기와 미군정청 문장이 병기되어 있는 유니폼을 지급했다. 손기정이 일장기를 가려야 했던 일이 서윤복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서윤복과 손기정의 서사를 연결해 메시지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무리수처럼 보인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미군정으로부터의 독립을 연결해 애국심을 자극하는 드라마를 만들려는 의도다. 하지만 실화의 힘에 기대면서 정작 실화를 왜곡하고 있으니 자연히 모순과 오해가 발생한다. 아쉬움도 크다. 미국을 악역으로 만드는 대신 한국을 알리려는 일념이나 개인의 성취에 집중하는 선택지도 있었으므로.
마지막으로 디테일도 올드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양변기를 몰라 당황하는 개그 장면, 조선을 무시하지 말라며 외국인에게 일갈하는 장면, 전 국민적인 응원에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장면... 감동과 눈물을 짜내는 데 최적화된 클리셰가 종합선물세트로 펼쳐진다. 한국영화에서 자주 목격한 익숙한 이 조합 역시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종합하면 < 1947 보스톤 >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마인드의 결정체처럼 보인다. 실화의 힘을 빌려 애국심을 고취하고, 눈물을 짜내고, 감동을 주면 성공이라는 식으로 직진한다. 그 과정에서 캐릭터의 완성도, 서사의 짜임새, 실화 고증 같은 요소는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나고 만다. 그 결과 2023년도 극장에 어울리지 않는 올드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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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및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