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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가 보여준 노장 감독의 욕망... '거미집'이 던진 화두

[미리보는 영화] <거미집>

23.09.15 11:15최종업데이트23.09.1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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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거미집>의 공식 포스터.

영화 <거미집>의 공식 포스터. ⓒ (주)바른손


 
올해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관객들의 다양한 반응을 얻은 <거미집>은 소재나 이야기 진행방식 면에서도 여러 화두를 던질 법한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랑>(2018) 이후 장편 영화 기준으로는 5년 만에 김지운 감독이 극장에서 대중과 만나는 작품으로 한 예술가의 고뇌와 욕망을 1970년대라는 시대적 분위기에 녹였다. 
 
감독이 그려낸 감독의 세계. 특히 <거미집>은 한국영화의 오랜 팬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을 여러 설정과 은유가 가득하다. 데뷔 이후 싸구려 치정극 감독으로 치부되던 김열(송강호)이 꿈에서 강한 계시를 받고, 대본을 대폭 수정해 이틀간 대대적으로 보충촬영에 들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구성상 흥미로운 점은 이야깃 속 이야기라는 액자구조를 흑백과 컬러 화면으로 구분했다는 점이다. 신성필림 세트장에서 어떻게든 이틀의 촬영시간을 확보해내려는 연출부와 공안정국을 두려워하며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제작사 측의 알력 다툼이 코믹하게 다뤄지는데, 김열 감독이 완성해내려는 영화는 흑백으로, 현실 속 김열 감독 이야기는 컬러로 묘사된다.
 
영화 현장 특유의 분주함을 에너지 삼아 각 캐릭터들은 저마다 역할을 꽤 고르게 배분받았다. 신성필림 대표 백 회장(장영남)은 철저히 김열 감독의 대립자로 등장해 초반부와 후반부에 긴장감을 부여하며, 백 회장의 조카 미도(전여빈)는 김열 감독의 협력자가 되어 재촬영에 조력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 이를테면 여자 주인공 유림(정수정)과 남자 주인공 호세(오정세)는 영화 속 배역처럼 실제로도 불륜 관계임이 드러나며 이야기에 입체감을 더한다.
 
 영화 <거미집>의 한 장면.

영화 <거미집>의 한 장면. ⓒ (주)바른손


  
 영화 <거미집>의 한 장면.

영화 <거미집>의 한 장면. ⓒ (주)바른손


  
<거미집>을 단순히 한 창작자의 욕망 내지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 벌어지는 소동극으로만 정의할 수 없다. 배경에서 유추할 수 있듯 한국영화의 대중화 기로에서 업적을 남기고,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감독 등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감독들에 큰 영향을 끼친 원로 영화인들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극중 김열 감독의 선배이자, 큰 감독으로 추앙받는 신상호 감독은 신상옥 감독을 떠오르게 한다. 신상필림 또한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의 변주로 볼 수 있다.
 
일각에선 김열 감독이 김기영 감독을 오마주한 캐릭터로 보기도 하는데, 그가 신상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묘사된다거나 신상필림에 소속한 배우들을 대거 활용한다는 점을 보면 오히려 김기영 감독의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 당대에 활동한 여러 감독의 실제 에피소드를 복합적으로 차용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구조적으로는 영화 현장 안팎의 묘한 이질감이 재미를 주고, 이야기 흐름을 놓고 보면 김열 감독의 광기와 집념이 조롱당하면서도 어떻게든 끈질기게 현실화되어 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일부 캐릭터들은 영화 속에만 등장하기에 환상적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이를 테면, 김열 감독 영화 속 주인공인 민자(임수정)는 호세나 유림과 달리 현실에선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김열 감독의 페르소나이거나 과잉된 창작욕을 그대로 은유하는 캐릭터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과연 <거미집>은 한국영화사를 향한 헌사일까. 혹은 예술성과 개인적 잡념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한 창작자의 방황기인가. 전자로 정의하기엔 김열 감독의 에너지와 주변 에피소드들이 꽤 복잡다단하게 구성돼 있고, 후자로만 보기에도 김지운 감독이 차용한 원로 영화인들 관련 상징들이 두텁게 쌓여 있다.
 
영화 자체만으로 보면 영화적 에너지가 가득한데, 각 캐릭터와 에피소드들이 일관된 주제를 향해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지는 다소 의문이 든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일부 캐릭터들은 어쩔 수 없이 영화적 스타일을 위해 소비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거미집>은 그간 한국 대중영화가 놓치고 있던 창작자 개인의 개성과 뚝심을 잘 반영하려 했다는 점에서 존재 의의가 충분하다. 현실과 과거, 미래를 향한 질문을 거세한 채 상업적 재미를 우선으로 삼았던 최근 대형 기획 영화 흐름에 일침을 놓는 작품이 될 것이다.
 
한줄평: 중견 감독이 마땅히 보여야 하는 여유와 결기 모두 담겨있다
평점: ★★★★(4/5)

 
영화 <거미집> 관련 정보

각색/감독 : 김지운
각본 : 신연식
출연 :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박정수 장영남 외
제공 : ㈜바른손
배급 : ㈜바른손이앤에이
제작 : 앤솔로지 스튜디오
공동제작 : 바른손 스튜디오, ㈜루스이소니도스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32분
개봉 : 2023년 9월 27일(수)
 
 
거미집 김지운 송강호 임수정 전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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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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