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연인>의 한 장면.
MBC
천연두가 인류에게 얼마나 무섭게 인식됐는지는 홋카이도·쿠릴열도·사할린의 아이누족에게서도 느낄 수 있다. 아이누족의 신화를 살펴보면, 이들이 천연두를 신격화하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라시나 겐조 홋카이도가쿠엔대학 교수가 쓴 <아이누 신화>는 "커다란 망치나 도끼, 괭이를 가지고 국토를 건설한 국조신(코탄카라카무이)은 왜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인지에 관한 전력(前歷)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라며 이렇게 서술한다.
"하지만 인간의 생활문화 기초를 펼친 반신반인의 아이누랏쿠르(인간 냄새 나는 신)의 어머니는 당느릅나무이고, 아버지는 상천(上天)을 다스리는 신의 남동생신 혹은 우레신, 천연두신이라고도 전해지고 있다."
인간 문화의 기초를 놓은 아이누랏쿠르의 아버지가 천연두신이라고 했다. 천연두의 위력을 깊이 인식하지 않았다면 이런 신화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됐던 최근 한동안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화장술의 변화다. 립스팁이나 색조 화장품의 필요성이 아무래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천연두 역시 인간의 화장술에 영향을 끼쳤다. 지리나 여행문화 등의 저술가인 쓰지하라 야스오의 <문화와 역사가 담긴 옷 이야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19세기 전반에는 피에로 같던 두꺼운 화장이 사라졌는데, 이는 종두의 발명에 힘입어 천연두가 격감하면서 여성들의 얼굴에서 곰보 자국이 사라진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빅토리아 시대에 코르셋이 다시 출현한 것처럼 여성들은 또다시 화장·미용·스타일에 대한 강박 관념에 사로잡혔다. 그 요인 가운데 하나는 외출 기회가 늘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 점이고, 거울과 사진기가 급속도로 보급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천연두가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 오늘날과 달리, 과거에는 위와 같이 천연두가 인간의 의식과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MBC <연인>에 묘사된 것처럼 병자호란 같은 전쟁의 흐름에도 파급력을 끼쳤다.
<연인> 제7회에서는 청나라 군영에 잠입한 주인공 이장현(남궁민 분)이 청태종 홍타이지(김준원 분)의 천연두 감염을 눈치채는 장면이 있었다. 이장현의 제안에 따라 주화파 최명길은 청군과의 강화 협상에 이를 적극 활용했다.
드라마 속의 최명길은 '마마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청 황제의 권위가 훼손될 것'이라며 청나라를 압박했다. '이대로 철군하면 청태종의 감염 사실을 비밀로 해주겠다'는 게 그의 약속이다. 결국 청나라는 인조의 항복을 받는 조건으로 철수를 단행하게 된다. 드라마 속의 이야기는 그렇게 전개됐다.
실제로도, 병자호란 중에 청나라 군영에서 천연두 환자가 발생했다. 2016년에 <민족문화연구> 제72호에 수록된 구범진 서울대 교수의 논문 '병자호란과 천연두'는 "정월 16일 보호토 휘하의 니루에 마마 환자가 발생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라며 "더구나 이 환자는 홍타이지의 어영 가까이에 머물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가 항복하러 나오기 2주 전인 양력 1637년 2월 10일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일이 청군의 작전계획에 영향을 줬다고 볼 만한 정황이 있다. 압도적인 우세를 유지하던 청군이 천연두 발생 다음날인 음력 1월 17일(양력 2월 11일)부터 갑자기 강화 협상을 서두른 사실이 그것이다.
드라마 <연인>은 조선 조정이 그런 상황을 적극 이용해 청나라의 조기 철군을 유도했다고 스토리를 전개했지만, 위 논문의 설명은 다르다. 청나라 군대가 조선을 빨리 떠나기 위해 적극적인 협상력을 발휘하는 쪽으로 상황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정월 17일부터 홍타이지는 남한산성의 조선 조정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며 "협상은 주효했다"고 논문은 평한다.
청태종은 협상뿐 아니라 전투 일정에도 변화를 줬다. 강화도 공격 시기를 예정보다 앞당겨 대성공을 거둔 뒤 조선 왕족을 사로잡고, 음력 1월 26일(양력 2월 20일)에 이런 사실을 조선 조정에 알렸다. 그런 뒤인 음력 1월 30일에 인조의 항복을 받았다. 천연두 발생이 청나라 측을 더 적극적이고 분주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병자호란은 세계 역사는 물론이고 조선 후기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런 병자호란의 향방을 좌우하는 데도 천연두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병균(病菌)뿐 아니라 병(兵)균의 역할까지 하면서 인류 역사에 개입하는 바이러스의 위력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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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