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난 다른 사람 될 수 없어, 난 그렇게 될 수 없어. 아버지가 원하는 삶 아닌, 그냥 내가 되겠어’라고 볼프강이 노래하잖아요. 제가 항상 뒤에서 대기하면서 듣는데, 가장 마음에 남아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기를 원하는 깊은 욕망이,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있잖아요. 저도 그런 두려움이 있어요. 진짜 내 모습, 내 밑바닥, 내 단점을 다 보여줬을 때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확신 비슷한 것. 저도 사람들이랑 만나면 호감을 얻기 위해서, 사랑받기 위해서 어느 정도 가면을 쓰니까요.”
EMK뮤지컬컴퍼니
"이제 제 이름은 '모차르트' 부인이 아니라, '니센'이에요."
뮤지컬 <모차르트!>의 무대는 1809년 11월 18일, 빈의 성 마르크스 묘지에서 시작한다. 신이 내린 위대한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묻힌 묘지에 일련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들을 안내하는 건 콘스탄체 니센, 한때는 콘스탄체 모차르트였고, 그전에는 콘스탄체 베버였던 여자. 모차르트를 거부하는 콘스탄체는 거래를 했다. 볼프강의 두개골을 원하는 이들에게 그가 묻힌 자리를 알려주고 안내료를 받기로.
익숙한 시작, 여러 번 보아온 장면, 그리고 드는 묘한 위화감. 무언가 달랐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서막을 여는 콘스탄체는 언제나 무언가에 쫓기듯 두려워했다. 그 기저에 깔린 게 모차르트에 대한 죄책감일지, 아니면 어둠에 대한 공포일지는 불분명하지만,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까지 닿을 듯한 그 불안감이 항상 요동쳤다.
"워낙 오래 전 일이잖아요…. 안내료는 5000이에요."
하지만 이번의 콘스탄체는 달랐다. 그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제 할 일을 하듯, 딱딱하고 사무적이었다. 또 지나치게 건조하지도 않았다. 배우 선민의 콘스탄체는 뮤지컬 <모차르트!>의 시작을 다르게 만들었다. 아직도 이 작품에는 새롭게 접근할 여지가 이토록 남아 있었다니.
"연출이 공포나 쫓기는 듯한 상황을 이야기하신 적은 없으셨어요. 제가 콘스탄체를 이해하는 방식과 비슷한 부분일 것 같아요. 콘스탄체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볼프강을 믿었지만 '볼프강은 언제나 음악이 먼저고, 나는 도저히 이 사람한테 첫 번째가 될 수 없겠구나. 영원히 음악을 이길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헤어졌잖아요. 볼프강을 너무 사랑했고, 저의 구원이었고, 한때 진짜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냥 옛날 일인 거죠. 어쨌든 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저도 그렇거든요. 저에게 어떤 정이나 의미가 깊었던 예전의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아주 먼 훗날의 제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거든요. 그게 아마 저와 콘스탄체가 가장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콘스탄체도 그런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콘스탄체는 그런 사람이지 않았을까…."
지난 2020년, 10주년을 맞은 여섯 번째 공연을 보면서 더는 이 작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는데, 오만이자 착각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올라오는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배우의 걸음을 내딛는 방법에 따라 또 이런 변주가 가능했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일곱 번째 시즌에 '콘스탄체'로 합류한 배우 선민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이다.
아름답고 우아한 건 소용 없어
생각보다 선민과 <모차르트!>의 인연은 오래됐다. 10년 전에도 작품 합류 제안이 왔었지만, 당시는 배우가 국내 활동을 쉬면서 캐나다에 머무를 당시였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불발되었던 작품. 하지만 그저 아쉬움만으로 남을 뻔했던 작품은, 10년의 세월을 지나 다시 찾아왔다. 오디션 제안이 오자, 배우는 감사한 마음으로 오디션에 응했다. 이전에 <모차르트!> 무대를 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새로운 접근도 가능했다.
"작품이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제가 부르는 '난 예술가의 아내라'는 모든 뮤지컬 지망생이 다 한 번씩 연습해 보는 노래이기도 하거든요. 한 번쯤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막상 하려고 하니까 제가 이때까지 해왔던 작품 중에 가장 어려운 역할이었어요. 연습을 시작하면서부터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런데 연출께서 제가 이 작품의 이전 무대들을 못 봤다고 말씀드리니 좋아하시더라고요. 어떤 편견 없이 접근할 수 있어서, 새롭게 뭔가를 만들어 가는 게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뮤지컬 <모차르트!>의 주인공은 당연히 타이틀 롤인 볼프강 모차르트이다. 볼프강은 콘스탄체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그와 결혼까지 하지만, 그와의 결혼 생활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 주변의 여러 인물 중 하나로, 한때 그를 열렬히 사랑했지만 결국에는 여러 상처 끝에 그를 떠나는 이다. 콘스탄체의 존재는 모차르트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인물이지만, 상연 시간 중 콘스탄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저도 이제 콘스탄체를 따라가면서 대본을 보니까, 처음에 약간 막막하기는 했어요. 콘스탄체의 여정이 좀 더 많이 보였으면 좋겠는데, 조금은 생략돼 있다 보니 과연 관객들이 설득이 될지 자신이 없었어요. 콘스탄체와 볼프강의 관계가 변화하는 것들, '그래, 둘이 저렇게 됐구나' '아, 마음 아프다' 이걸 제 역량으로 보여드리기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 제가 나오는 신에서 저를 보여드려서, 그 다음 신에까지 감정과 이야기가 연결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죠."
결국 인물을 만들어 나가는 건 배우이다. 배우는 인물과 자신이 지닌 교집합에서 무언가를 꺼내기도 하고, 여집합에 속해 있는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없던 자신을 새롭게 만들기도 한다. 깊은 고민 끝에 나온 그의 콘스탄체는 이전의 콘스탄체와 비슷하면서도 또 선민만의 색깔을 가진, 그래서 색다른 콘스탄체로 완성될 수 있었다. 선민이 연기하고 노래해 왔던 이전 인물들과도 꽤 닮았다. 활짝 웃고 있는데 동시에 고혹적이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내면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어두우면서도 포근한 인간.
"되게 좋은 단어들을 골라 주셨네요. (웃음) 제가 기본적으로 조금 어두운 거에 끌리는 편이긴 해요. 예전에 <드라큘라> 때 루시처럼, 마냥 명랑한 내면을 표현하는 건 사실 제가 노력해서 만들어 내는 모습이거든요. 배우마다 가진 고유의 색이나 분위기가 있잖아요. 제가 거쳐 온 캐릭터는 어쩔 수 없이 저라는 한 사람이 역할을 하다 보니까 제가 묻어나오는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제 안에서 인물과 비슷한 면을 발견해서, 제 안에서부터 시작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어떤 분들은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이 '우울해 보인다' '어두워 보인다'라고도 하세요. 그것 역시도, 제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제가 갖고 있는 면이 아닐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사실이 콘스탄체와 친해지기가 좀 어려웠었어요. 다른 작품을 할 때 비해서 시간이 더 걸리긴 했지만, 결국에는 제 안에서 콘스탄체와 비슷한 부분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었어요.
예를 들면, 작품에서는 엄마의 입을 빌려서 콘스탄체가 '게으르다'라고 표현이 됐죠. 하지만 실제로 게으른 아이라기보다는, 정확하게는 그 집을 벗어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고, 자기 의지대로 무언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죠. 그냥 그 집에서 태어났고, 집안 환경이 그랬고, 언니에 가려 언제나 주목받지 못했고, 남을 등쳐먹는 이 집이 싫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가족들과 한통속이 돼야 했죠. 순응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게을러 보이는 건데, 저도 제 인생의 어떤 한 시점에서는 실제 제 성격이 그렇지 않았음에도 그냥 순응하기 위해서 '나 원래 이래'하는 면이 있었거든요. '시키는 대로만 살면 되잖아'라고 생각했던 그때의 저를 떠올리며 콘스탄체를 만들었어요."
난 너를 처음 본 순간, 마법에 걸린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