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옥만세> 스틸컷
찬란
영화는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두 소녀의 광기를 따라가다가 더 잔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학폭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나 싸우고 전복되다 다 같이 폭발해버리는 관계가 무겁지만은 않다. 천국에 갈 생각은 없고 지옥에 갈 각오는 되어 있는 대책 없는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죽기 직전 불현듯 맹렬한 생존력이 생겼고 복수를 다짐한다. 죽고 싶어서 안달이었는데 죽음에 다가갈수록 살고 싶어진다. 아니 구체적으로는 억울에서 못 죽겠다는 객기다.
복수의 대상 채린을 찾은 곳은 이상한 교회였다. 겉으로는 평범하고 자애로운 교단처럼 보이지만 작은 시스템의 축소판이었다. 행동을 점수화해 환산하고 가장 많은 점수를 받으면 낙원으로 갈 자격이 생긴다고 속삭였다. 신 앞에서 모두가 죄인이고 평등한 사람이라 말하지만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했다. 누가 봐도 사이비인데 아무도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다들 빠져있었다.
부모들은 전 재산을 바쳐서라도 낙원에 가려고 안달이다. 낙원에 가까워질 점수를 높이기 위해 자녀를 들볶았다. 아이는 모자란 점수를 채우려고 안간힘을 썼고, 그럴수록 부모와 자식 사이 불화는 커져만 갔다. 이 상황을 지켜본 나미와 선우는 학교 밖은 천국이 아닌 또 다른 지옥임을 깨닫고 전복을 결심한다.
임오정 감독은 제목 '지옥만세'를 과거 프랑스혁명 때 외치던 구호라고 설명했다. 기존 세대를 몰아내고자 하는 시스템 붕괴가 담긴 의미다. 얼마나 살기 힘들면 지옥이 낫겠다는 말을 할까. '세상 다 망해버려라'를 외치던 두 소녀의 마음과 일치하는 역설적이면서도 독특한 제목이다. 감독, 배우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올해 발견한 반짝이는 독립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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