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수> 스틸컷영화 <밀수> 스틸컷
영화 <밀수> 스틸컷
한 길 사람 속으로 풍덩
<밀수>가 정의하는 수직과 수평의 의미는 권 상사(조인성)와 춘자(김혜수)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군천으로 새로운 루트를 뚫으려는 전국구 밀수 오야붕 권 상사는 춘자를 협박하며 우리 관계가 평등하다는 착각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자 춘자는 수평으로 퍼져있는 게 아니라 수직으로 깊은 관계를 갖는 게 좋은 거 아니냐고 받아친다. <밀수>에서 수평은 뭉치지 못하고 퍼져있는 상태다.
남성 캐릭터들은 수평적이다. 어선이나 해양경찰선을 타고 수면 위에서 바다를 누비거나, 차를 타고 평평한 도로를 달려 군천으로 모여든다. 신분과 지위, 조직의 크기와 힘의 차이로 위계가 형성되고 억지로 구성된 상하관계지만 각자의 좌표평면에서 동일한 눈높이의 목표를 향해 달려드는 포식자들이다. 수직적 움직임이 열 길 물속으로 빠지는 순간 이들이 몰살당하는 건 깊은 관계에서 필요한 호흡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반면 해녀들은 바다와 수면을 오가는 수직적 움직임에 능하다. 군천의 해녀들은 진숙의 결정에 따르지만, 때에 따라 자신의 의지로 다른 길을 택하기도 한다. 자식, 가족과 같은 어떤 이의 배신을 겪어도 다시 생을 이어가고, 하찮게 보였던 아웃사이더의 저항과 분노의 표출이 가능했던 것도 위계가 아니라 신뢰와 우정으로 한 길 사람 속에서 호흡하는 훈련을 거친 덕분이다. 진숙과 춘자가 겪었던 위기 역시 오해로 인해 한 길 사람 속에 풍덩 빠질 수 없었던 맥락에서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