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은 자신이 스스로를 존중해오지 않았음을 깨닫고 나를 위해 소비하기로 결심한다.
JTBC
정숙은 나아가 스스로도 이런 자리를 자처한 면이 있음을 깨닫는다. 2회 정숙은 신용카드를 많이 쓴다고 타박하는 인호에게 "당신 명의 카드 갖고 다니면서 돈 쓸 때마다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재산 앞에서 초연할 수 있다는 오만함, 내 손으로 번 돈이 아니니 날 위해 쓰는 건 부당한다는 결벽증. 뭐 이런 거 아니었나 싶어. 그런데 그런 게 다 필요가 없더라고. 좀 뻔뻔하게 내 맘대로 살려고."
이는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를 깎아 내려왔다는 자각이었다. 또한, 친구 미희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집에서는 먹이사슬 맨 아래쪽에 있지만, 밖에 나가면 알아주는 대학병원 교수 남편에 우등생 아들, 딸 가진 부잣집 사모님. 비록, 전업주부지만, 나도 알고 보면 의대 출신 엘리트라는 우월감 (...) 근데 죽다 살아나 보니까 다 필요가 없더라."
이는 자기 자신을 세속적 시선으로 규정해왔고 이런 것들이 자신을 주변인으로 만들왔다는 깨달음이었다.
이런 성찰 끝에 정숙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대학병원 레지던트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정숙은 드라마 중반까지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을 온전히 스스로 내리지 못한다. 레지던트 생활을 그만두기를 바라는 남편에게 "계속하게 해달라"고 허락을 갈구하고, 집에서는 총총거리며 자신의 빈자리를 다른 식구들이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애를 쓴다.
스스로를 찾아 나섰지만, 자신의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남편에게 의지하고 가족들의 허락을 바라는 굴레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마침내 내 삶을 스스로 결정하다
하지만,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후, 정숙은 마침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한다. 인호의 외도 사실을 안 9회. 정숙은 "집을 나가겠다"고 결심하는데, 고3인 딸 이랑(이서연)에게는 양해를 구하지만, 남편과 시어머니의 반대에는 단호하게 대한다. "나랑 어머니 의견은 상관없는 거야?"라는 인호에 말에 명확하게 "어"라고 답하고, "나 혼자서는 이 집 건사 못한다"고 애원하는 시어머니에게도 "도우미 아주머니를 구하시든지, 기준을 낮추시든지"라고 답하며 '허락'을 구하는 대신 '선언'을 한다.
이후 정숙은 의료봉사에 가서 주부로 살아온 경험을 살려, 환자들을 진심을 돌보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당뇨에 걸린 할아버지의 발을 닦아주고, 음식을 만들어주는 돌봄은 주부로서의 자아와 의사로서의 자아가 통합된 정숙만의 모습이었다(10회). 이렇게 자신만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한 정숙은 이제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좌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10회 정숙을 마음에 품은 로이 킴(민우혁) 교수가 남편의 외도에 대해 말을 꺼내자 정숙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저 스스로 찾아볼게요. 그게 교수님이 생각하는 길과는 전혀 다를지 몰라도 제 선택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전 지금 전공의 과정을 잘 마치고 내 인생에 닥친 이 파도를 무사히 건너고 싶은 마음밖에 없어요."
이는 마침내 정숙이 그동안 자신의 삶을 규정해왔던 것들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를 정의하고 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음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나는 정숙의 이 말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런 마음으로 자기 삶을 성찰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그 선택이 무엇이더라도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일지라도)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