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구속', 성시경 유튜브 캡쳐
성시경 유튜브 캡쳐
우리나라에 성시경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혹시 그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드라마, 영화, 광고에, 라디오,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배경으로라도 깔리는 그의 노래는 듣지 않을라야 않을 수가 없으니.
그의 첫 등장을 기억한다. '내게 오는 길', 그때는 키 크고 호리호리했던, 턱선이 날렵했던 신인 발라드 가수, 신승훈이 인정한 발라드의 후계자라 했던가. 그 후로도 나의 인생에는 시기별로 그의 목소리가 BGM처럼 깔린다. 대학시절, 명동거리를 걷던 '좋을 텐데', 어느 이른 아침, 양재역 커피숍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기 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처음 들었던 '거리에서', 성시경의 리메이크 음반은 그 시절 나의 엠피쓰리에서 만약 테이프였다면 끊기고 늘어질 만큼 재생이 되었다.
나는 그의 콘서트도 한 번 가보지 않은, 엄청난 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덧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그의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살고 있다. 음악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내가 푹 빠져 보았던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그의 노래가 흘러나왔으니 나는 그와 나의 가장 말랑거리는 감성을 공유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공유라고 하긴 그렇다. 그는 나를 모르니 그냥 나의 인생의 일부를 그 목소리에 걸쳐두었다고 표현하면 좀 그런가.
티브이도 라디오와도 멀어진 요즘, 그와 만나는 창구가 생겼다 바로 유튜브. 이런저런 이유로 컴퓨터는 항상 켜져 있는 상태이고, 아이들의 콘텐츠를 이용하려 유튜브에 보통 들어가지만, 나의 추천목록, 최근 재생목록에는 언제나 성시경의 유튜브 채널이 등장한다. 보통은 노래를 많이 듣는다. 아, 성시경이 이 정도였나? 노래가 너무 좋다. 예전에는 목소리가 참 감미롭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새삼스레 그의 가창력에 감탄하곤 한다. 가창력이라는 것이 고음을 잘 내는 것뿐만 아니라 감정의 섬세함, 표현력, 완급조절 그리고 목소리톤이 다 포함된 것이라는 것을 이젠 나이를 제법 먹은 내가 알게 되어 그의 노래가 새삼 더 좋게 들리는 것일까.
그 시절 풍경, 느낌으로 돌아가게 하는 노래
유튜브에서 재생되는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때 그 시절의 풍경이, 느낌이, 감정이, 냄새와 공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다. 가장 최근에 올라온 노래는 김종서와 함께 부른 '아름다운 구속'인데 다시 1990년대 후반의 중고생인 나로 돌아간 것 같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학교 선생님 중에 이 아름다운 구속이란 표현이 엄청난 시적 허용 아니냐며 제목부터 가사, 노래를 극찬하셨던 분도 계시고 유난히 머리 기른 남자를 싫어했던 우리 아빠도, 과장되게 성대모사를 했던 개그맨들까지, 그 모습을 티브이로 보던 옛날 우리 집의 풍경, 꼬리를 살랑이며 돌아다니던 강아지까지 떠올라서 노래가 무한 반복되는데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정성껏, 다정하게 부르는 발라드 가수와 그 어렵다는 노래를 시원하고 수월하게 부르는 락커의 콜라보도 너무 좋았다. 마흔이 되어 이 노래를 듣고 있을 나를 10대의 나는 상상도 못 했다. 그 시절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른이 되면 이런 노래를 안 들을 줄만 알았겠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하면 여전히 성시경을 듣고, 감탄하며 설레어 하지만 그때는 몰랐던 트로트 가사의 깊은 울림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와 버린 이별인데, 슬퍼도 울지 말아요. 이별 보다 더 아픈 게 외로움인데 그리울 때 그때 울어요, 하는 옛 가사부터 아 테스형! 하는 노래의 가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