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외비>를 연출한 이원태 감독.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최근 공개한 세 작품이 모두 '나쁜 사람들' 이야기다. 조직 폭력배와 결탁한 강력계 형사(<악인전>), 돈과 법을 우습게 보며 이를 이용해 복수하는 사람들(<법쩐>),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기꺼이 영혼을 파는 정치인(<대외비>)까지. 이원태 감독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길래 이런 인물들이 탄생하는 걸까. <대외비> 개봉을 앞둔 지난 23일 감독을 직접 만나 이야길 들을 수 있었다.
특히나 <대외비>는 구체적인 공간과 시간 설정이 특징이다. 1992년 부산을 배경으로 만년 국회의원 후보 해웅(조진웅)이 공천에 탈락하면서 지역 건달 필도(김무열)와 손잡고 지역 실세 순태(이성민)에 반기를 드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제1 야당 유력 후보가 무소속이 되어 선거전을 펼친 후 실제 선거판을 움직인 어둠의 세력의 실체를 파악하다가, 영혼을 빼앗기게 된다는 이야기를 누아르 장르에 풀어냈다.
5년 전 첫 만남
<대외비>와 첫 만남은 2018년 여름 무렵이었다. 이원태 감독의 기억을 쫓아가면 <악인전> 촬영 무렵 조언 정도를 구하는 차원에서 시나리오를 접했고, 해당 작가에게 "이 정도의 글을 쓰신 분이라면 직업으로 계속 하셔야겠다"라는 의견을 주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지금의 제작사에게 해당 작가를 소개해주기까지 했다고.
"나중에 <악인전>이 칸영화제 초청돼 바쁜 일정을 보낸 뒤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문득 내 영화로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영화를 존중하고, 영화인을 환대해주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그때 <대외비> 생각이 딱 나더라. 알고 보니 이야길 쓰신 이수진 작가님이 제 의견에 힘을 얻어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더라. 제가 준비 중인 다른 작품이 있었는데 제작사 대표에게 먼저 제안했다. 각색할 테니까 연출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해서 순태의 직업을 모호하게 만들고, 필도와 정반대의 성격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인 지금의 영화가 탄생했다. 이 감독은 "애초부터 권력의 속성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특히나 사회에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동시에 누군가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힘을 순태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력은 결국 지배력인데 필도에겐 눈에 보이는 물리력을 강화시켰고 순태에겐 정반대의 힘을 주었다. 사실 폭력을 쓰고 사람도 죽이는 물리적 폭력이 우리 일상에 가깝잖나. 하지만 정작 무서운 건 보이지 않는 힘이다. 해웅을 통해 그 사이에서 결국 타락하는 인간의 모습을 포착하려 했다. 본래 목표도, 열정도 있는 사람이었는데 욕망에 사로잡힌 뒤 타락하잖나. 인간적으론 타락하는데 세속적으론 권력이 점점 세진다. 그런 모순, 이중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감독 표현을 빌리면 비정한 세계관이다. 이원태 감독은 "사실 순태를 몰락시키고 해웅에겐 행복한 결말을 줘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라며 "그것보단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설프게 해피 엔딩을 택한다면 그건 영화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고 느껴질 것 같았다"라고 강조했다.
"세상엔 밝은 면도 있고, 선한 힘도 분명 있다. 그건 다들 알잖나. 하지만 저변에 깔린 애써 부정하고 싶은 것들은 현실에서는 잘 안 보려는 것 같더라. 감독으로서 그걸 드러내는 게 일종의 소명이랄까. 제가 대단하진 않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알아야 할 것을 영화적으로 풀어내려고 한다. 예를 들어 할리우드를 보면 < LA 컨피덴셜> 같은 류의 영화가 있잖나. 경찰의 암투, 반전에서 오는 서늘함이 있다. 욕망으로 가득한 뒷거래가 영화에 잘 담겼을 때 오는 쾌감이 있다.
각색할 때 든 생각인데 순태는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 해웅을 파우스트라고 생각하곤 했다. 영혼을 악마에 파는 이야기잖나. 이 말을 아무에게도 안 했는데 촬영 당시 이성민 배우가 제게 순태가 메피스토펠레스 같다고 하시더라. 아, 이야기에 보편성이 있겠다 싶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