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안방판사>의 한 장면.
JTBC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이기심과 자기 합리화는 사라지지 않는 본성과 같은 것일까. 2월 14일 방송된 JTBC 법정 예능 토크쇼 <안방판사>에서는 헤어숍 직원의 횡령사건과 학교폭력 등을 주제로 치열한 토론을 펼쳤다.
이날의 첫 번째 소송은 헤어숍에 벌어진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 공방이었다. 같은 헤어숍에서 근무하는 헤어디자이너 겸 관리자 모준수씨는 직원인 임수민 씨를 고발했다. 고소인인 준수씨는 피고소인 수민씨가 관리자의 허락없이 헤어숍 비품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자신의 개인 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경우가 빈번하다고 폭로했다.
두 사람이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는 일상이 공개됐다. 수민씨는 손님들을 위한 테스트 명목으로 헤어숍 비품을 본인이 먼저 사용하거나 쓰다 남은 물건들을 가져가기도 했다. 간식 구입 용도로 받은 준수씨의 카드로 편의점에서 개인물품을 구매하기도 했다. 준수씨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일단은 가벼운 주의만 주고 넘어갔다. 준수씨가 굳이 개인카드까지 주면서 배려한 이유는 본인 역시 힘들고 배고픈 시절을 겪어본 경험이 있는 데다, 수민씨가 첫 제자였기에 남다른 애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민씨가 이번엔 점심식사를 위하여 받은 준수씨의 개인카드로 비싼 소고기를 먹으며 무려 10만 원이 넘는 비용을 결제하자 준수씨의 인내심도 폭발했다. 영수증을 확인한 준수씨는 결국 수민씨를 따로 불러내 "이렇게 쓰고 오잖아? 그러면 약오른다니까 너한테"라고 분노를 드러내며 "내가 치사하게 돈 가지고 뭐라 해야 해? 일 잘하면 뭐하냐, 내 돈 다 갖다 쓰는데, 내가 지금 딸 키우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호의가 권리가 되어버린 듯한 모습에 지켜보던 이들도 모두 안타까워했다.
준수씨는 처음에는 수민씨의 사정을 고려하여 비품을 가져가는 것도 어느 정도 묵인해줬으나, 최근 들어 지적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준수씨의 카드로 나간 수민 씨의 식대는 한 달에 많으면 300만 원에서 500만 원까지 이른 적도 있다고 밝히며 놀라움을 자아냈다.
변호인단은 이 사건에서 '절도-횡령-배임'의 개념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횡령은 본인이 관리하고 있는 타인의 재물을 불법적으로 차지하는 것, 절도는 타인이 관리하는 타인의 재물을 훔치는 것. 배임은 업무상 임무를 저버리고 불법적으로 재산상 이익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고소인 측은 개인 용도 사용을 근거로 직원의 횡령-배임 주장을, 피고소인 측은 형법상 정당행위 개념을 근거로 사회통념상 받아들여지는 행위는 처벌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각기 변론전략으로 내세웠다.
고소인 변호인단 측은 수민씨가 "손님을 위하여 준비된 비품을, 직원이 업무상 임무를 저버린 채 횡령한 것이므로 가중처벌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피고소인측은 조선시대 기미상궁에 비유하며 염색약을 본인이 직접 사전테스트한 것도 업무의 일환이라고 반론했다.
하지만 고소인 측은 "피고소인은 허락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비품을 사용한 것이 문제다. 기미상궁이 밥을 다 먹어버린 격"이라며 재반박했다. 또한 업무 수행 비용을 충당하라며 준 카드로 통상적인 식대 범위를 넘어선 비용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 역시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피고소인측은 장발장(레미제라블)의 사례와 비유하며, 수민씨의 행위가 사회 상규(사회 통념에 비추어 용납될수 있는 행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 있기에 위법성이 소멸된다고 해석했다. 또한 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 수민씨의 재정난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사회 통념에 비추어볼 때 현저히 '부족한 급여'에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복지개념으로 지급된 카드를 사용한 것은 과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고소인 측은 사회적 용인 가능 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이고, 수민씨가 준수 씨의 카드로 지출한 월 평균 300만~500만 원의 지출을 1년 평균으로 환산하면 약 4800만 원에 육박하고, 이는 수민씨가 월급으로 받는 최저임금(2400만 원)의 두 배에 육박하는 규모라고 꼬집었다.
다만 사용금액의 많고 적음은 죄의 성립 여부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실제 2011년 버스운수회사에서 '800원 짜리' 자판기 커피를 먹었다는 이유로 해고처분을 받은 기사에 대하여 법원이 회사의 결정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사례도 있다. 사회 상규라는 기준이 용인되려면 목적의 정당성, 상황의 긴급도, 불가피성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수민씨의 경우에는 세 가지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고소인 측의 판단이었다.
피고소인 측 신중권 변호사는 두 사람의 공통적인 문제로 '공사 구분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은 직장 상사와 직원 관계이면서도 사적으로도 깊은 친분으로 연결된 특수관계다. 수민씨는 준수씨의 호의를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남용한 측면이 있고, 준수씨는 처음부터 선을 명확히 정해주지 않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 책임이 있다는 것. 애초에 용도가 제한된 법인카드가 아닌 개인카드를 준 것은 고소인측의 암묵적인 승낙이 있었기에 피고소인측의 배임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고소인 측은 사회상규나 추정적 승낙이라는 것은, 당사자들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았을 때 적용되는 법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준수씨는 수민씨가 자신의 카드를 어떻게 얼마나 활용할지 미리 알았더라면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고소인 측은 "관리자의 일시적인 호의나 배려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법적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고소인 측은 "호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민씨가 유능하고 관리자인 준수씨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존재이기에 곁에 두는 것이다. 카드 지급을 호의라고 주장하기보다 해당 금액을 차라리 정식으로 급여에 반영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횡령과 배임이 단지 '소확횡'같은 우스갯거리가 아닌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범죄임을 지적했다. 횡령은 상호간의 신뢰가 무너지는 행위이고 이를 가볍게 여긴다면 우리 사회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이지훈 변호사는 이 사례를 논어에 나오는 범상(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죄를 저지르는 것)을 언급하며 "소확횡이라는 건 결국 범상이다.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최종판결이 내려졌다. 고소인 준수씨의 승소였다. 다만 판결문에서는 준수씨에게도 호의와 복지에 대한 기준을 애매하게 고지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준수씨는 수민씨에게 허용할 수 있는 금액으로 한달 100만 원을 제안하며 통큰 모습을 보였다. 수민씨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동안 배려해준 준수씨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며 훈훈하게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