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포스터
에스엠지홀딩스(주)
1990년대는 그동안 억눌렸던 변화에 대한 욕구가 폭발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문화가 태동하던 시기였다. 댄스뮤직과 랩으로 대표되는 서태지와 아이들(가요)이 등장했고 <쉬리>(영화)의 성공은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기폭제가 됐다. PC통신(컴퓨터) 상용화는 오늘날 인터넷 시대의 밑그림을 제시했으며 스타크래프트(게임) 열풍은 PC방의 전국적인 확산을 가져왔다. 그리고 <슬램덩크>(만화)는 NBA, 농구대잔치,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함께 당시 10, 20대들 사이에서 엄청난 농구 붐을 일으켰다. 오죽하면 예쁜 여자 친구와 빨간 차를 갖기보단 덩크슛 한 번 하는 게 소원이라는 가사의 노래 <덩크슛>까지 나왔을까.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가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일본의 '주간 소년 점프'에서 연재한 만화 <슬램덩크>는 <드래곤 볼> <유유백서>와 함께 일본 만화 주간지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현재까지 일본 누계 단행본 발행 부수는 1억 7천만 부에 달하고 TV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로 재탄생하며 연재된 지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식지 않는 인기를 자랑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판본으로 출간되어 1500만 부 이상의 누적 판매고를 올렸으며 "포기를 모르는 남자", "왼손은 거들뿐" 등 명대사와 명장면이 각종 패러디와 밈의 형태로 회자하는 중이다. 21세기에도 <슬램덩크>의 문화적 영향력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작가는 의도한 대로 결말을 냈을지언정 독자 입장에서 보면 <슬램덩크>는 '미완결'의 작품이다. 대다수 만화가 연재를 무리하게 이어가다 원래의 재미와 개성을 잃어버리는 일이 빈번하다. 이와 달리 <슬램덩크>는 느닷없이 끝났다. 당시 <슬램덩크> 마지막 화엔 '1부 완결'이라 적혀 있어 한동안 다음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원작의 표현을 응용하자면) '후속 편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이후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는 숱한 후속 편 제안을 거절했고 대신에 폐교를 빌려 칠판에 후일담 23장을 그린 기획전 '슬램덩크 그로부터 10일 후'와 송태섭과 이한나가 등장하는 단편집 <피어스>(1998)를 선보여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을 뿐이다.
그런 이노우에 아케히코 작가가 26년 만에 <슬램덩크>로 돌아왔다. 무려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감독 겸 각본까지 맡았다. 그는 10년 전부터 극장판 제의를 받았지만, 파일럿 영상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 번번이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4년에 접한 파일럿 영상을 보고서 자신이 참여한 첫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만들자고 생각을 바꿔 먹는다.
"캐릭터들의 얼굴에 영혼이 담겨 있는 것을 보고 제작을 결심했다. 기술이나 영상의 수준보다 감정적인 부분이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