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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을 전공한 작곡가의 인생을 바꾼 것은?

[인터뷰] 제14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 정혁 작곡가

23.01.03 13:48최종업데이트23.01.0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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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혁 작곡가
정혁 작곡가아창제
 
"전통악기로 오케스트라를 편성해 컨템포러리 음악을 만드는 것에 반했어요."
 
서양음악을 공부한 정혁(24) 작곡가가 언제부턴가 전통음악에 빠져 새 인생을 시작한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기억했다.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쳐서 음악이 정해진 길이었다는 그는 중학교 때에는 실용음악 작곡에 흥미를 가졌다. 하지만 음악을 하면서 재즈가 안 맞아 클래식으로 대학에 진학했고, 우연찮게 전통음악을 들으면서 국악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결국 서양음악으로 대학에 갔지만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반수를 해서 지금의 대학(중앙대 전통예술학부)에 들어오게 됐다.
 
국악에 눈을 뜬 계기는 유튜브를 통해서 우연히 들었던 '2017년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아래 '아창제')'의 연주 장면이었다. 당시에 국악을 마주한 느낌을 묻자 그는 "신기하고 이질적"이었다며, 작곡가의 아이덴티티를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매력이었다 말했다.

작곡 인생의 정점에 선 음악을 세상에 내놓다
 
 지난 1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 위촉을 받아서 초연작을 올린 바 있는 <검은 집> 연습 장면
지난 1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 위촉을 받아서 초연작을 올린 바 있는 <검은 집> 연습 장면세종문화회관
 
정씨는 오는 1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제14회 아창제에서 <산조아쟁을 위한 협주곡 '검은 집'>을 선보인다. 작품의 제목으로 사용된 '검은 집(The Black Home)'은 2010년 3월 26일, 백령도에서 발생한 천안함 피격 사건이 모티브가 됐다. 작곡가가 초등학교 6학년 겪었던 사건 이후 시간을 보내면서 느껴온 심상을 오롯이 담아낸 곡이라 설명했다.
 
이 작품은 바다에 빠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동해안오구굿'의 음악적 이디엄에서 시작됐다. 기본적으로는 장단과 일부 무가 등에서 영감을 얻었고, 동해안 지역 굿에 나타나는 심볼을 적용했다. 이에 따라 독주 산조아쟁은 전통에 기반한 강렬한 무속성과 음악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비르투오소(virtuoso, 음악의 대가)적 기량이 요구된다. 여기서 관현악은 음의 유동적 성질, 현악의 색채적 운용을 중심으로 독주 산조아쟁과 색채적 조화에서 나타나는 미감을 우선적으로 구현했다. 곡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어렸을 당시의 기억이 어떻게 국악곡으로 탄생하게 됐는지 배경이 궁금했다.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는 어렸기 때문에 피부에 와닿지 않았어요. 뉴스 특보가 나오거나 TV프로그램이 결방했고, 선생님이 심각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들로 분위기만 기억납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 실리는 것을 보면서 이상하게 늘 마음에 다가왔어요. 순수하게 추모받지 못하고 정치, 음모론 등으로 인해 왜곡되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희생된 이들에 대한 온전한 추모와 안식은 마치 기다릴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집은 불편한 현실로 당당히 문을 열어놓지 못하고, 검은색으로 색칠되어 모습을 숨긴 집처럼 느껴진다며 제목의 의미를 들려줬다.
 
1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다

이 곡은 지난 1월에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 위촉을 받아서 초연작을 올린 바 있다. 당시에는 '동해안굿'에 대해서 세대별 작곡가들이 풀어가는 공연이었는데, 마침 그가 마음에 담아두었던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한 심상과 동해안굿 중에 물에 빠진 망자의 넋을 기리는 '동해안오구굿'의 주제가 맞아서 곡을 만들게 됐다. 그때 악단으로부터 처음 의뢰받았을 때의 심정을 이렇게 되돌아봤다.
 
"언젠가 이때 심상을 주제로 작품으로 다뤄보고 싶었어요. 처음 위촉을 받았을 때, 딱 이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품계획을 악단 측에 보냈어요."
 
더불어 서울시국악관현악 당시의 초연과 이번 아창제 연주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형식이라든지 일부 섹션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초연작은 감정적인 느낌이 많았요. 비극적이면서 슬프게 들렸는데, 그게 싫었거든요. 비극이나 슬픔보다는 단지 입체적인 심상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이런 감정이 듣는 것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요소들은 다 빼버렸습니다."
 
이 작품은 추모곡이 아니며, 본인의 심상을 다룬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단지 작곡가로서 추도적인 마음을 담기 위해 동해안오구굿을 빌렸다고. 심상이 주제인데, 슬프지만은 않고 기이하고 어이없고, 분노 등 입체성을 말하고 싶었다. 동해안오구굿이 천도굿인 것은 맞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장단, 무가선율, 상징적인 아이템을 가져왔다. 그는 곡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관객들에게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기 위해 '검은집'이라는 한 편의 시를 들려줬다.
 
집으로 가자.
망망한 검은 바다로부터 땅에 이르러
터덜터덜 고향으로 다다랐을 때
마치 숨은 듯 검게 색칠되어 하염없이 숨죽이던 그 집은
불을 켜고 문을 열어 기다렸던 그대들을 반길 거라고.
그 한숨 섞인 외침이 들려오는
짙게 검어진 그대들의 집으로.
 
국악 부문 당선자들 중 최연소

그는 이번에 당선된 국악 작곡가들 중 최연소이다. 현재는 대학교에 재학 중이고 내년 3월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에 입학할 예정이다.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아창제에 당선이 되는 것도 특이한 경험인데, 특히 대학교 재학 중에 당선된 소감을 들려줬다.
 
"학부 재학 중에는 여러 콩쿠르 정도가 목표였어요. 아창제는 사실 장기적인 목표였는데 일찍 당선되서 너무 기뻐요. 이 대회는 저에게 작곡가로서 큰 비전 중 하나였고, 이것은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곡가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덧붙여 그가 아창제에서 국악 인생의 시작의 의미를 더해 이번 연주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렇게 설명했다.
 
"클래식이나 국악 작곡가들에게는 워낙 중요한 무대입니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제약이 없어요. 대중적이거나 컨템포러리 음악도 가능해요. 대한민국 안에서 메이저 악단의 지원을 받아 연주할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한국에서 순수음악이 불모지다보니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할수 있는 것이 작곡가들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대학교를 마치고 본격적인 작곡가로 인생을 시작하는 그에게 앞으로 어떤 음악을 선보이고 싶은지를 묻자 그는 이렇게 소감을 드러냈다.
 
"예술가들은 각자의 전공 기술을 사용하여 자신을 표현하는데, 저도 비슷한 의미에서 한국전통악기를 사용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이런 시도가 독창적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졸업을 앞두고 현실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국악관현악을 들어주는 사람이 많이 없기도 하고 좋은 작품을 쓸 작곡가들도 부족해 외로운 환경이에요. '이게 과연 음악적인 가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최선의 작품을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내년에는 대학원에서 음악 공부를 더 해볼 생각입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도 도전해보면서 제 색깔을 드러내는 연습할 거예요."
아창제 정혁 국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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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예술만 씁니다." 20년 넘게 문화예술계 현장에 몸담고 있으며, 문화예술 종합시사 월간지 '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년)과 한겨레신문(2016~2023년)에서 매주 문화예술 행사를 전하는 '주간추천 공연·전시' 소식과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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