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왓챠
아내가 아파서 요리를 한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담담하게 써내려가 그의 글귀들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상념에 젖게 만든다. 드라마는 강창욱이 쓴 그 블로그 글과도 같다. 서로 헤어져 살았던 부부 그리고 이제 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내, 그런데 그들은 한 번도 이른바 '감정'이라는 걸 드러내지 않는다. 서로에 대해 섭섭했던 것, 죽음이라는 관문 앞에 선 서러움, 우리가 이런 소재의 드라마들 속에서 늘상 접해왔던 감정의 분출이 이 드라마에는 없다.
어쩌면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한석규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공중파가 아닌 왓차 오리지널이 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리가 블로그 속 남의 삶을 엿보듯, 그렇게 강창욱과 정다정을 관조하게 된다. 그런데 블로그를 본 이들이 거기서 감정을 느끼듯, 외려 회차를 거듭할수록 서로 헤어져 살았다는 이 부부의 진득한 부부애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부부란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앞서의 '부부란 특별한 관계가 아니다'라는 그 특별한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엄마와 아버지의 그런 동거를 이해할 수 없는 이가 있다. 엄마와 자기를 두고 훌쩍 집을 나갔다가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 없는 아들은 대학 입학 선물로 독립을 선언한다. 물론 아들의 반항은 엄마의 병세 앞에서 무기력하게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에 대한 앙금이 당장 없어진 건 아니다.
드라마는 '식구(食口)', 같은 집에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정의처럼 아버지와 아들의 긴 간극도 보리 굴비를 통해 풀어간다. 아들을 위해 요리하는 아버지, 엄마를 위해 함께 요리하는 아버지와 아들, 그런 두 사람을 보는 엄마의 미소. 엄마는 그저 자신을 병구완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일까? 아니면 죽음의 그림자를 느낀 그녀에게는 또 다른 큰 그림이 있는 것일까?
남편에게 자신의 병구완을 맡겼지만 서로 떨어져 살았던 시간의 서먹함이 당장 해소되는 건 아니다. 남편이 만든 시금치 나물을 정색하며 뱉어내던 아내는 너무 매운 잡채에 긴장을 풀고, 몇 날 며칠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 낸 돔베 국수에 얼굴을 핀다. 분리되었던 가족이, 관계가 주방의 남편이 만들어 내는 음식들을 통해 조금씩 다시 가족이라는 자리를 찾아간다. 여전히 그들은 저마다의 방으로 돌아가지만 한결 가족같다. 그렇다면 가족은 무얼까? 드라마를 보다 문득 되묻게 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