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페르시아어 수업> 스틸 이미지
영화사 진진
<페르시아어 수업>의 시작은 거대한 스케일의 거짓말이다. 질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가상의 페르시아어를 창조해야 한다. 전쟁과 학살이라는, 평상시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극단적인 상황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평화로운 일상이라면 불가능해 보이는 경이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질은 위태로운 상황을 숱하게 겪는다. 관객은 영화 전반 내내 대체 저러다 들통이 나는 건 언제일까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끝내 질은 의사소통 대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인공 언어를 창안하는 데 성공한다. 코흐 대위가 그에게 배운 가짜 페르시아어로 그럴듯한 시를 선보이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 거짓말의 소산인 화자가 단 둘인 페르시아어는 전쟁 통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대화를 만들어간다. 언제라도 거리낌 없이 수용자의 생사여탈 권한을 거머쥔 수용소 고위간부와 매일 죽어나가는 수용자의 전형적인 관계성에 과외수업 교사와 학생이란 틀이 덧입혀진 것이다. 질은 평범한 죄수였다면 감히 꺼내지 못할 질문을 코흐에게 던지거나 자기 목숨을 담보로 타인의 편의를 봐주려는 시도에 도전하기에 이른다. 코흐 대위는 질의 대담함이 당혹스럽긴 하지만 페르시아어 수업이 연장되면서 둘의 관계가 자연스레 변화되고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렇게 질이 처음엔 오직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창안했던 페르시아어는 언어가 가진 위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에 이른다. 이제 가상의 페르시아어는 두 화자의 관계는 물론 각자의 생각을 변형시킨다. 질은 지금껏 자기 생존을 위해 실용적으로 새 단어 창조를 위한 소재로만 수집하던 다른 수용자들의 이름을 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을 그들의 이름(과 존재감)을 기억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의 인공 언어를 일종의 가상공간에 존재하는 저장장치처럼 활용하게 된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오직 목숨을 부지하기에도 벅찬 홀로코스트의 현장에서 실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인공 언어는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말과 글'은 의외로 힘이 세다. 질은 언제든 코흐는 물론 일개 독일 병사에게 찍히기만 해도 죽임 당할 운명이었지만 그가 창조한 가짜 페르시아어는 그 자신의 이타적 변화는 물론 무형의 권위와 영향력을 코흐에게 발휘하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상투적 표현이 새삼 다르게 보이는 순간이다.
매력적으로 형상화된 인물군상들의 위력
그렇게 수용소의 시간은 숨 가쁘게 흘러간다. 그 전개 와중에 질과 코흐의 변화는 물론 주변 인간군상들 각자의 캐릭터가 개성 있게 각인되기 시작한다. 그런 형상화를 통해 관객들은 지난 세기의 참혹하기 그지없었던 실존을 생생하게 바로 앞에서 목격한 것처럼 간접체험하기에 이른다. 그 과정을 지원하기 위해 <페르시아어 수업>은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개성 없는 전형적인 악역 캐릭터가 아니라 각자의 사정과 배경을 구축한 채 자신의 행위를 납득시키는 조역들을 탄탄하게 배치해둔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 구축은 영화가 펼치는 이야기가 그저 흘러간 과거사를 재연하는 스테레오 타입에 끝나지 않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나치독일 군대라는 집단주의 체제에선 허용될 수 없었던 익명성과 내심의 자유를 가짜 페르시아어의 세계에 입문한 덕분에 얻게 된 코흐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자신을 위한 이기적 의도가 전제되어 있음에도 자기 본의는 아니지만 코흐는 종종 선행을 베풀게 된다. 하지만 둘 사이의 대화에서 질이 꼬집듯 코흐는 본인이 직접 유태인을 죽인 적은 없을지언정, 학살을 조직적으로 수행하는 자들을 배불리 잘 먹여 원활하게 업무를 소화할 수 있게 만드는 존재다. 질이 지적한 코흐의 역할은 곧 당시 나치에 저항하지 않고 각자의 이익을 쫓던 평범한 독일인을 표상하는 셈이다.
사사건건 질을 해치려는 독일군대 병장 역시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저 출세와 연인을 간절히 바랄 뿐이던 존재다. 그런 평범한 인간이지만 나치가 허락한 알량한 특권, 권력 관계에서 약자를 짓밟는 쾌락은 어린 청년에게 너무나 달콤한 쾌감이다. 그리고 질 때문에 강제로 이별하게 된 (그가 연모하던) 동료여군에 대한 원한은 사랑에 빠진 청년에겐 불구대천의 원수지간과도 같다. 나치즘과 전쟁은 그렇게 평범한 장삼이사들을 악인의 길로 이끈다. 한나 아렌트의 그 유명한 개념,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유다.
영화는 생각보다 디테일한 구성을 선보인다. 코흐나 병장이나 그들이 소속된 부대는 평범한 독일 국방군이 아니다. 복장에서 깨알처럼 이들이 나치당의 사병인 '무장친위대', 그것도 악명 높은 수용소 관리부대에서 유래된 '토텐코프' 사단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해골 마크를 표식으로 한 이 부대는 전쟁범죄로 악명 높은 무장친위대 소속 부대들 중에서도 강제수용소 간수 역할로 출범한 만큼 악명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정작 그 전범집단의 지휘관인 코흐 대위는 유태인을 죽이거나 학대하는 장면을 (질이 유태인이라 판단하고 구타할 때 외엔)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코흐의 군복과 군모에 부착된 무장친위대 'SS' 마크와 해골 표식은 더 이질적인 느낌을 풍긴다. 코흐는 그저 요리사로서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서류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데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코흐는 종종 질을 감싸고 보호하려는 것 때문에 부하들의 투서나 상관의 불신에 위기를 겪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은 코흐의 선량한 본성보다는 나치 체제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경우인지를 절절하게 깨닫게 해주는 환기에 가깝다. 혹자는 질을 편애하는 코흐가 동성애 취향이 있다고 의심한다. 동성애자는 나치독일 체제 하에선 건강한 종족 번식을 가로막는 죽어 마땅한 존재다. 그리고 코흐가 페르시아로 전후 이주하겠다는 소박한 소망은 나치에 반대하는 동생의 존재와 연결되기에 그의 입지를 위태롭게 하기 딱 좋은 소재다. 그런 코흐는 페르시아어를 배우면서 새로운 삶을 꿈꾸며 위험한 일탈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가상의 페르시아어로 기록된 2840개의 이름들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 스틸 이미지
영화사 진진
하지만 질의 입을 빌어 그런 코흐조차 결국 아무 죄 없이 죽어나간 이들에겐 소극적 가해자에 불과하다는 게 <페르시아어 수업>의 단호한 입장이다. 그런 개개인의 소박한 장면에 넋을 잃다가는 역사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규정은 어려워진다는 제작진의 준엄한 선고와도 같다. 물론 죄의 경중 면에선 평가가 달라야 하겠지만 심지어 질의 어설픈 첫 탈출 시도 때 그 경로의 위험성을 알려주며 도로 복귀할 것을 권하던 프랑스 경찰관 역시 자기보신에만 몰두하는 군상임은 분명하다. 영화의 탁월한 점이 그런 개개의 캐릭터들을 입체적으로 구현해내는 측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질이 단어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재료가 된 덕분에 잊히지 않고 기록될 수 있었던 수천 개의 이름들, 그 이름의 주인들이 영화 속에서 또렷하게 각인된다. 질은 처음엔 대충 닥치는 대로 단어를 급조하지만 점점 그의 작명은 하나의 골격을 갖추게 된다. 누군가의 이름을 묻고 표정을 보면서 질이 창조하는 단어는 고유의 개성을 갖춘다. 2년여의 시간 동안 그는 그렇게 강제수용소를 거쳐 간, 거의 대부분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그만의 페르시아어로 기록하기에 이른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그 의의가 강렬한 울림으로 등장할 때 화면 속 기록자나 밖 관객이나 넋을 놓게 될 테다.
그런 집중력은 이 작품이 진정한 홀로코스트 장르영화로 기획되고 초심을 잃지 않은 채 완성되었음을 관객의 뇌리에 깊숙하게 각인시킨다. 영화의 도입부와 엔딩이 연결되는 막바지 지점은 그런 상상을 증명해내는 인상적인 마무리로 훌륭히 연결된다.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이 이성과 연민의 힘을 통해 잔혹한 세상에 전심전력으로 맞설 때 기적 같은 일이 탄생할 수 있음을 '사실에 기반을 둔' 이 영화는 기억하게 해준다.
<작품정보> |
페르시아어 수업 Persian Lessons, Persischstunden
2020|러시아, 독일, 벨로루시|드라마
2022.12.15. 개봉|128분|15세 관람가
감독 바딤 페렐먼
PD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주연 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질 역), 라르스 아이딩어(코흐 역)
출연 요나스 나이, 레오니 베네스치, 알렉산더 보이어
원작 볼프강 콜하세 'Erfindung Einer Sprache (언어의 발명)'
수입 및 배급 영화사 진진
2020 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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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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