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탑> 스틸컷
(주) 영화제작전원사
전작 <소설가의 영화>는 허영에 찬 소설가를 빗댄 경쾌한 풍자가 인상적이었다. 신작에서는 언뜻 동화 같은 묘한 감정이 든다. 제목처럼 탑에 갇힌 '라푼젤'이나 '푸른 수염의 새 신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건물은 강남이라는 지명과 어울리지 않는 동떨어진 혹은 고립된 탑과도 같았다. 기이한 현상은 감독이 잠시 자리를 비운 후 시작되는데 이후 상상인지 실제인지 구분되지 않는 상황이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은 기시감을 준다. 마치 폭풍우를 만나 고군분투를 겪다 집으로 돌아온 도로시 같다.
하지만 홍상수 영화답게 <탑>은 솔직함이 매력이다. 조금씩 자신의 근황을 담았던 영화와는 달리 노골적으로 지난 시간을 드러낸다. 뜬소문으로만 가득한 홍상수와 김민희의 사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대사를 따라가다 보면 둘의 근황과 가족들의 기분, 앞으로의 미래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정말 저랬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묘한 재미를 안긴다. 두 사람은 공식 석상에서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기에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말하고 관객은 자유롭게 해석하면 된다. 그게 바로 홍상수 영화의 묘미다.
<탑> 속에 등장하는 정수와 해옥의 대사처럼 말이다. 딸은 영화감독인 아빠와 가정에서의 아빠가 다르다며 불만을 품고 있다. 한 마디로 "여우다"라고 말한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정수의 말에 해옥은 반박한다. 여전히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한 한국에서 한 개인의 위치에 대해 고민토록 만드는 부분이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일 수 있는 이중성도 꼬집는다.
배우들의 연기는 실제인지 분간 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말맛이 살아 있는 대사는 한층 생기롭다. 또한 원래 건물 주인의 취향인지 영화를 위해 꾸민 것인지 알 수 없는 건물과 내부 인테리어도 감각적이다. 마치 연극의 막과 막 사이를 알려주는 듯한 멜랑꼴리한 음악이 들려오면 건물 안에서의 시간은 현실과 다르게 흘러간다. 오프닝부터 들렸던 음악이 또다시 들리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은연중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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