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게되는 제주2022 인문문화아카데미' 첫 번째 강연에 나선 강유정 교수.
하성태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한수란 캐릭터 설정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속 양영희 감독의 모친 강정희 여사가 그러했듯,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제주4.3 당시 일본으로 도망쳐 나가야 했다. 그 재일조선인들이 오사카 등지에 정착했고, 지금의 1~2세대의 주축을 이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향후 <파친코>의 한 축이 멜로 드라마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아의 아버지 한수는 주요한 캐릭터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를 통해 적지 않은 창작 에피소드를 포함시킨 제작진이 재일조선인 구성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제주4.3과 한수를 연결시킬 개연성도 예상해 봄직 하다.
'드라마 <파친코>를 통해 제주 다시 이해하기'란 주제로 강연에 나선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문화평론가) 또한 이 같은 한수 캐릭터와 제주와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지난 10월 29일 마포중앙도서관 6층 세미나홀에서 (사)제주바람이 개최한 '다시 보게되는 제주2022 인문문화아카데미' 첫 번째 강연에 나선 강 교수는 K-콘텐츠 열풍 속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드라마 <파친코>를 통해 제주와 자이니치를 들여다 봤다.
"우리 아버지는 제주에서 귤 농장을 했어. 난 열두살 때 아버지를 따라 오사카로 갔지. 난 제주도를 고향이라 생각하지 않아.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 (소설 <파친코> 60p 중 한수의 말)
"한수의 아버지는 번 돈은 모조리 술을 퍼마시는데 쓰고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참 대책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혼자 힘으로 숲에서 먹을 캐거나 사냥을 하고 좀도둑질까지 하는 아들에게 모질게 굴었다." (소설 <파친코> 61p)
소설 속 제주도 출신인 한수의 아버지는 이외에 별달리 묘사되지 않는다. 앞서 소개한 대로 드라마는 이들 한수와 아버지의 이야기에 7화를 통째로 할애했다. 재일조선인의 뿌리를 그리는 동시에 이를 제주 출신으로 설정한 것은 분명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한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희생 마다하지 않고 아들이 똑똑하고 출세하기 위해서 야쿠자 개가 되도 되는. 매우 전통적인 동양인 한국인 아버지 상에 가깝다"며 "원작은 한량의 이미지에 가깝지만 몸이 아파도 선자를 따뜻하게 돌보는 선자 아버지 덕수와 상반된다"고 설명했다. 또 강 교수는 "<파친코>가 가진 힘은 단순하지 않다"며 이렇게 부연했다.
"주변에 <파친코>에 대해서 삐딱하게 질문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미국 소설, 미국 드라마가 아니냐고. 맞다. 애플TV라는 자본도 미국 것이 맞다. 하지만 <파친코>가 다루는 역사는 바로 우리의 역사다. 그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역사를 소재로 미국인들이 만든 것이다. 그래서 더 우리가 비상하게 관심을 갖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 보자. 우리의 역사를 이렇게 세게 다룬 작품이 있느냐고. 위안부 피해자 문제, 강제 징용 문제, 관동대지진 내 한국인 학살 문제 등등. 이런 소재로 전 세계인들이 볼 수 있는 OTT 드라마를 만들었던 적은 없다."
또 강 교수는 "외교 마찰 등을 걱정하면서 이런 소재를 만들지 못했다"며 "앞으로 우리가 세계인이 주목하는 소프트파워를 잘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왕 K-드라마가 잘 나가고 있으니 이런 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파친코> 시즌2, 제주4.3 다룰까
드라마 밖으로 나와 볼까. <파친코> 7화에서 정운인과 이민호가 연기한 제주 출신 부자의 실제 배경은 어땠을까. 당시 오사카로 이주한 조선인 사회 구성원의 절반가량이 제주도 출신이었다. 이들 제주인들은 일본의 산업화 과정에서 대량의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1910년대부터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기 시작했다.
1922년 제주와 오사카를 오가는 여객선 군대환이 취항한 이후에는 더 많은 제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들은 오사카 이쿠노구의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면서 힘든 노동을 감내했고, 일본인들의 차별과 천대, 그리고 관동대지진을 비롯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드라마 <파친코>는 수많은 전문가들을 초빙, 극 전반에 걸쳐 세심 고증을 받았다. 제주어도 마찬가지다. 제주 출신 연극인 변종수씨는 배우 이민호와 정웅인의 제주어 지도를 맡아 제주어 대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고, 제주인들 에피소드에도 도움을 줬다.
이날 강 교수의 강연이 끝난 후 무대에 오른 변종수씨는 드라마 제작 당시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파친코> 시즌2에도 변씨는 참여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대로, 이에 대한 결과는 한창 각본 작업에 돌입한 제작진이 제주의 역사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느냐에 달려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