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 이미지.
워터홀컴퍼니(주)
어느덧 50대에 접어든 에블린은 미국에서 힘겹게 세탁소를 꾸려가고 있다. 옛날 20대 때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웨이먼드와 결혼해 미국으로 이민을 왔던 것인데, 한때 배우를 꿈꿨던 것에 비해 현실은 칙칙하기만 하다. 남편은 착하기만 해서 믿음이 안 가고 하나 있는 딸은 대학을 중퇴하고 커밍아웃을 했다. 늙고 병들었지만 꼬장꼬장한 아버지까지 있다.
그러던 중 세금 신고를 잘못해서 세탁소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자, 에블린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남편과 함께 국세청에 가서 조사를 받는다. 깐깐하고 무례한 직원 앞에서 난감해하고 있던 찰나, 다른 우주에서 왔다는 웨이먼드가 에블린을 새롭고 이상한 세계로 이끈다.
웨이먼드가 말하길 절대 악이자 멀티버스의 완전한 붕괴를 꿈꾸는 조부 투파키를 막을 사람이 오직 에블린밖에 없다며 그녀를 설득하려 하지만, 그녀에겐 멀티버스의 평화고 나발이고 당장 눈앞의 세무 조사가 우선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우선일까? 그런데, 다른 우주의 웨이먼드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듣도 보도 못한 상상력이 활개 치다
영화는 크게 세 파트로 나뉘는데, 제목을 이루는 세 단어 '에브리씽(모든 것)' '에브리웨어(모든 곳)' '올 앳 원스(한꺼번에)'가 각 파트의 제목이다. 영화를 보면, 그야말로 모든 곳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일어나 들이닥친다. 흔한 이민 가정의 삐걱거리는 분주함이 극초반을 장식할 뿐, 멀티버스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펴는 초반 이후엔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비주얼도 비주얼이거니와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듣도 보도 못한 상상력이 활개를 치니, 환상적인 건 물론 황홀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겠다. 정신은 메인 우주의 것이지만 육체가 타 우주로 옮겨 다니며 에블린에게 상상이나 꿈에서나마 간신히 볼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된다. 그건 모두 에블린의 아주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큰 선택까지 촘촘하게 길이 나 있는 덕분이다. 이 우주에선 에블린이 이렇게 살고 있지만 저 우주에선 완전히 다르게 살고 있다. 그걸 깨달으면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수 있겠지만 정신적·육체적으로 버티기 힘들 테다.
그런가 하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완전히 깨닫고 온전히 받아들인 절대악 조부 투파키는 멀티버스를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며 온갖 존재가 되는 걸 식은 죽 먹기처럼 한다. 영화는 그녀의 '저세상' 패션으로 형상화시키는 한편 '할리 퀸'의 이미지를 차용한 듯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으면서도 호기심 충만한 한편 굉장히 잔인하다.
중년의 위기, 그리고 애증의 가족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