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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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의 제작과 연출, 촬영과 편집까지 도맡은 정관조 감독은 2008년부터 2019년까지 11년간 은성호, 은건기, 손민서 세 가족을 기록한 결과물로 <녹턴>을 세상에 선보인다. 방송 피디 출신인 감독은 2017년 8월, SBS 스페셜 2부작으로 방영되어 화제를 모으며 한국독립PD상을 수상했던 <서번트 성호를 부탁해> 참여 후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버전의 극장용 영화를 추가편집으로 완성했다.
방송용 버전이 시간 연대기 순으로 가족들의 애환을 시청자들의 공감에 맞춰 풀어냈다면, 영화화된 버전은 조금 더 감독의 작가적 시선과 호흡이 느껴지는 편집을 취한다. 영화는 다양한 층위로 접근 가능한 경로를 갖고 중층적인 면모를 짙게 드러낸다.
2_1. 장애 소재 영화로 <녹턴> 읽기
영화를 소화하는 첫 번째 경로로는 역시나 장애 소재 영화로 보는 시각이 우선될 것 같다. 최근 종영을 맞이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공전의 인기와 함께, 주인공 우영우가 가진 장애 형태를 그대로 연상케 하는 이 영화 속 은성호의 음악적 재능과 장애인으로서의 일상이 아무래도 관심을 끌 테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지장이 꽃피긴 하지만 비장애인에 비해 압도적인 집중력에 기반을 둔 특수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픽션과 현실의 둘은 통하는 바가 제법 있으니.
드라마 속 우영우 변호사는 발달장애 3급으로 일정한 주변의 조력이 있다면 일상생활을 비장애인과 크게 차이나지 않게 영위할 수 있는 정도로 분류된다. 물론 지능이나 등급과는 무관하게 자폐성 스펙트럼 장애는 케이스나 상황에 따라 적응에 천차만별 지장을 갖긴 하지만. 현실의 은성호는 2등급으로 보다 더 중증에 속한다. 간단한 활동은 가능해도 장애가 있다는 게 누가 봐도 티가 나는 수준이고 항상 돌봄이 필요한 상태다(<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에서도 우영우 변호사와 1등급 발달장애인이 함께 있지만 우영우가 1등급 장애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묘사된다).
최근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드라마로 인해 조명되면서 때맞춰 개봉한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장애 관련 영화로 분류될 것이 분명하다. 드라마와는 비교 불허인 현실의 발달장애 당사자 묘사가 충실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영화의 핵심적 갈등의 축으로 장애인인 가족 구성원 부양과 돌봄으로 인한 비장애인 가족의 고통과 갈등이 사실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의 사실 그대로인 내용은 드라마 속 캐릭터가 판타지를 가미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와 비교해 충분히 유용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2_2. 음악 영화로 <녹턴> 듣기
다음으로는 음악영화로 분류되는 접근이 <녹턴>을 즐기는 두 번째 방법론이 될 테다. 은성호는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모두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다년간 오케스트라와 연주활동을 펼쳐왔다. 처음에는 장애인 연주자들과 실력 경쟁보다는 희소성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점점 그의 음악활동은 실력 자체로 평가되는 발전을 이뤄가는 중이다. 장기간의 촬영을 통해 완성된 영화에는 그 세월이 오롯이 담겨 있기에 전문지식까지는 갖추지 않더라도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고 일정한 정보를 갖춘다면 훨씬 더 확장된 감상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다.
특히 <녹턴>에는 쇼팽의 피아노 야상곡들이 영화 내내 중요한 국면마다 등장하는데다, 심지어 영화의 제목까지 차지해버린다. '녹턴'의 풀어쓴 말이 '야상곡'이니 말이다. 음악가가 활동하던 당대에는 기존의 거장들과 유리된 비전형적 연주와 작곡 스타일로 제법 시련도 겪었지만 결국 현대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많이 연주하는 선배 음악가가 된 쇼팽, 그리고 서번트 증후군으로 비장애인 연주자들과는 독자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는 은성호가 은연중에 겹쳐 보이는 효과 또한 부가적으로 파생되는 셈이다.
쇼팽의 여러 곡들이 영화에 삽입되어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두 곡이다. 어머니 민서가 둘째 건기의 음악적 재능을 드물게 칭찬하는 장면과 연결되는 인상적인 대목에서, 어머니는 자신이 죽으면 건기가 '쇼팽 녹턴 C# 단조'를 꼭 연주해주길 청한다. 쇼팽이 임종 시에도 젊을 적 떠나 끝내 돌아가지 못한 식민 지배에 허덕이던 조국 폴란드를 의인화한 '어머니'를 찾았던 역사와 비교하면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과 함께 하는 피아노 선율은 '녹턴 b장조 op 62-1'이다. 쇼팽과 은성호 간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상상해보는 것도 <녹턴>을 즐기는 하나의 경로로 충분히 흥미진진한 찰나가 될 것이다.
3_희로애락이 압축된 인간 드라마, <녹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