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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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역시 콜비 코빙턴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패배한 이후 공식적으로 아직 은퇴를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링 위에서 멀어진 상태였다. 정찬성은 동병상련의 심경으로 선배에게 "그때 어떻게 결정을 하신 건지 궁금하다. 저한테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막막함을 드러냈다.
김동현은 당시 무명의 신인급이었던 코빙턴에게 완패하면서 가장 자신있었던 링 위에서 압도적인 실력차를 느끼고 "이게 내 한계구나, 그만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나만 보여줄 수 있는 내 영역이 있다고 자부했는데, 그 나만의 영역이 사라진 느낌을 받았다. 물건으로 치면 매력이 없는 선수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고백했다. 링위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결국 본인의 결정이었다고.
정찬성은 노장인 추성훈에게는 "몸이 너무 아픈데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질문했다. 어깨, 코, 무릎, 손목 등 수술하지 않은 데가 없다는 정찬성은 "원래 다치는 게 무섭지 않았는데 요즘은 무섭더라"고 고백했다. 40대 후반까지 파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추성훈 역시 수술만 10번 이상 받았을 만큼 몸이 성치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추성훈은 담담하게 "안 다치고 하면 운동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니까. 할 수 있고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다"라고 밝혔다. 이어 "나도 은퇴할까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인생을 보면 매 순간이 그냥 한 페이지다. 시합을 져도 한 페이지, 다쳐도 한 페이지다. 길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니까 너무 많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며 후배를 격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 있을 만큼 격투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그렇게까지 힘들고 괴로운 격투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외로 레전드 파이터 세 사람 모두 서로의 표정을 번갈아 쳐다보며 고개만 갸우뚱할 뿐, 누구도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세 사람 모두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별다른 이유 없이도 자연스러운 끌림에 따라 격투기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정찬성은 "사람을 만날 때도 별다른 이유없이 그냥 좋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격투기도 '그냥' 좋았다"고 고백했다.
한편으로 추성훈은 "나도 김동현도 타이틀 매치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정찬성의 마음을 100% 이해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거다. 은퇴를 하든 도전을 계속하든 정찬성의 마음을 100% 믿어줘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다 멋있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며 정찬성의 선택을 응원했다.
추성훈은 정찬성의 나이가 36세라는 사실을 듣자마자 곧바로 "(아직) 할 수 있네"라고 격려했다. 추성훈이 UFC에 처음 도전했을 때가 현재의 정찬성과 같은 나이였다고. 그만큼 '도전하기에 늦었다'라는 이야기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정찬성은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정찬성은 어릴 때 추성훈의 모습을 보고 격투기의 꿈을 키웠다고 밝히며 "추성훈이 출연한 방송을 한 시간 동안 무릎꿇고 봤을 만큼 존경했다. 항상 역전승으로 이기는 모습을 보고 너무 멋있다고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김동현에 대해서는 "UFC 10위권 선수들 정도는 현역과 맞붙어도 모두 이길 수 있다"며 여전한 기량을 높이 평가했다.
김동현 vs 추성훈 vs 정찬성, 세 파이터가 붙는다면 누가 최강자일까. 전성기에 같은 체급이라는 전제하에 정찬성을 압도적인 최강자로 꼽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 그럼 정찬성이 1등이라면 2등은 누구냐는 짓궂은 질문이 나오자, 당황한 김동현과 추성훈은 서로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 눈치를 보다가 피차 강점이 다른 '박빙'이라는 데 타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