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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다움'이 불러온 비극적 결말

[리뷰] 영화 <파워 오브 도그>

21.12.07 17:00최종업데이트21.12.0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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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나는 엄마가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엄마를 돕지 않으면 난 사내도 아니지."

영화는 이 문구와 함께 시작된다. 과연 사내답게 엄마를 도우려는 '주체'가 누굴까? 그리고 시작되는 이야기, 사내다운 남자 필(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이 시선을 끈다. 일자무식처럼 보이는데 유려한 필적, 알고보면 예일대 출신이라니. 하지만 동생 조지(제시 플리먼스 분)와 함께 목장을 경영하고 있는 필은 손님들을 초대한 자리에 동생이 씻고 오라는 부탁이 싫어서 그 자리 참석을 마다하고, 말끝마다 전설의 카우보이 '브롱코 헨리' 가라사대를 외치는 '마초남'이다. 
 
 파워 오브 도그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필, 사내답고 사내답고자 하다 

필은 거침없다. 흔히 남자들 군대 이야기하듯 브롱코 헨리와의 거침없는 카우보이 시절 이야기를 연신 쏟아내는 필은 거친 밧줄을 맨손으로 잡으며 그가 이끄는 목장 카우보이들을 '정신적'으로 제압한다. 또한 오랜 시간 함께 지낸 동생을 여전히 공부도 못해 대학도 못 간 놈이라며 대놓고 무시한다. 

그런데 대놓고 무시하면서도 동생이 잠시 잠깐이라도 없으면 찾아댄다. 그런 필에게 청천벽력같은 일이 생겼다. 나란히 한방을 쓰던 동생이 결혼을 했다며 그들이 소를 팔러 나간 읍내에서 식당을 하던 로즈(커스틴 던스트 분)를 데려온 것이다. 여자라면 '사서 욕망을 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던 필, 그런 그에게 로즈는 '동생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아들을 대학 보내기 위해 동생의 돈을 노리는 협잡꾼일 뿐이다. 

<파워 오브 도그>는 <피아노> 제임 캠피온 감독의 복귀작이다. 무려 12년 만이다.  19세기말 빅토리아 시대 스코틀랜드와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자신의 삶에 결정권을 가질 수 없었던 미혼모 에이다의 욕망이 '피아노'를 매개로 절실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드러내어졌던 작품이 바로 <피아노>였다. 손, 그것도 하얗고 검은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이 얼마나 '에로틱한 존재'인가. 아니, 인간의 순수한 욕망은 결코 억눌러질 수 없는 '감정'이라는 걸 피아노라는 매개체를 통해 솔직하게 드러냈던 제인 캠피온의 작품은 그래서 오래도록 회자되는 명작으로 기억된다. 

그래서였을까? <파워 오브 도그>에서도 '피아노'는 갈등의 매개체가 된다. 결혼 후 집에 온 로즈가 공손하게 인사를 하지만 내가 왜 당신 시아주머님이냐며 필은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로즈에게 피아노를 선물한 조지, 손님을 초대한 자리에서 연주해줄 것을 요청한 조지를 위해 로즈는 연습을 하지만, 그녀의 서투른 연주는 능숙한 필의 만돌린 연주에 묻혀 버린다.

피아노를 정점으로 안정과 행복을 얻고 싶은 로즈와 그런 로즈를 인정할 수 없는 이 집의 실질적 권력자 필의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난다. 조지의 아내로서 농장에 왔지만 그녀의 모든 것이 무시되는 상황에서 로즈는 점점 술에 의지하고 급기야 '알콜릭(알콜중독)'의 상태에 빠진다. 
 
 파워 오브 도그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변함없이 농장을 자신만의 '성채'로 유지하며 로즈를 정신적으로 옭죄어 가던 필, 하지만 변수가 등장한다. 방학을 맞이하여 로즈의 아들인 피터(코디 스밋 맥피 분)가 농장을 찾은 것이다. 

두 사람은 이미 '구원'의 사이이다. 로즈의 식당을 찾은 필이 피터를 남자답지 못하다며 조롱한 것도 모자라 그가 정성스레 만든 종이꽃을 담뱃불 쏘시개로 써버렸기 때문이다. 엄마가 사준 청바지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채 등장한 피터를 여전히 필은 무시하지만, 그 무시하던 피터가 그만 필만의 비밀 장소를 엿보게 된 것이다. 

연기로 치면 두말하면 잔소리가 되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필, 거친 카우보이의 외양, 하지만 그 한편에서 자신만의 비밀 장소에서 사연이 있는 듯한 스카프로 자신의 벗은 몸을 애무하는 필, 그 양극단의 인물이 바로 <파워 오브 독>의 '관건'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에이다의 욕망은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 표출되었다. 칭송해 마지 않던 전설의 카우보이의 이름은 피터가 찾은 남성 나신이 게재된 잡지 속에 등장한다. 영화 속 배경이 되는 1925년은 미국에서 게리 쿠퍼와 존 웨인이 등장하는 서부 영화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시대였다. 게리 쿠퍼와 존 웨인으로 상징되는 '남성다운 남성'이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시대. 그 시대에 동성애자로서 카우보이를 이끈 농장주로 살아가야 했던 필은 그래서 '마초'로 자신을 포장한다. 

마초가 쏟아낸 혐오의 종말 

손님을 초대한 동생이 형에게 부탁한 유일한 간청이 '제발 좀 씻어달라'가 되듯이, 동생조차도 깜쪽같이 속인 필의 '마초 코스프레', 하지만 그의 억눌린 '욕망'은 '혐오'라는 형태로 표출된다. 자신은 숨어서야 풀어내는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낸 듯한 피터는 그래서 용납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집착인지, 가부장으로서의 보호인지 모호한 동생이 데리고 온 로즈는 인정할 수 없는 상대였다.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 구약 시편 22장, 20절

사회적으로 많은 심리적 '혐오'의 기원에 정작 그 '혐오' 대상에 대한 애증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처럼, 필이라는 인물을 통해 제인 캠피온 감독이 집요하게 주목한 건 바로 그 혐오의 실체이다. 즉, 필에게 로즈는 자신의 정체성을 억누르면서까지 구축한 경제적 공동체를 위협하는 '개'의 세력이지만, 정작 필 그 자신이 '개'의 성정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파워 오브 도그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그런 필이기에, 자신의 비밀을 아는 듯한 피터에게 접근하다 그가 농장 앞의 산을 '개'의 형상으로 알아보는 순간, 그저 '개의 세력'이던 피터를 다른 관점에서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필의 피터에 대한 미묘한 호의는 로즈의 불안감을 더욱 가세시키고, 결국 필의 '파국'을 초래한다. 

'엄마를 돕지 않으면 난 사내도 아니지.' 영화는 이 서막의 미스테리한 문구를 풀어내는 한 편의 스릴러적 구성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그 결말을 통해 제인 캠피온 감독은 묻는다. '사내다움'이란? 필이 무시하고 조롱해 마지 않던 피터의 여성스러움, 그 여성스러움이 숨긴 '사내다움'이 칼이 되어 필을 겨눈다. 필의 사내다움도, 피터의 사내다움도, 모두 왜곡된 남성성이다. 그 왜곡된 남성성이 1925년 몬태나 농장의 비극을 잉태한다. 과연 그 '비극'은 1925년 미국만의 것일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파워 오브 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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