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당신 얼굴 앞에서> 스틸컷
(주) 영화제작전원사
정옥은 언니가 시애틀에서 서울로 왜 느닷없이 날아왔는지 모른다. 궁금하지만 그렇다고 꼬치꼬치 캐물을 만큼 그들은 정겨운 자매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깨어난 상옥은 커피잔을 홀짝거리다 무료한 듯 정옥의 손을 향해 손을 뻗는다. 깊이 잠든 정옥을 상옥은 차마 깨우지 못한다. 정옥과 상옥은 그런 정도의 거리를 안고 살아간다.
"정말 이상한 꿈을 꿨어. 좋은 꿈이야?! 그런 것 같아. 꿈 얘기 좀 해봐.
아니, 최소한 12시간은 지나서 얘기할 거야. 왜?! 복권이라도 한 장 살까 봐!"
잠에서 깨어난 정옥이 말하는 꿈은 상옥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정옥은 순순히 꿈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다. 김유신의 누이인 보희와 문희의 꿈 이야기가 재현되는 21세기 서울의 아파트. 보희 자매는 꿈을 팔고 사면서 인생의 급전을 마주하지만, 상옥과 정옥은 우리에게 꿈의 실체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의미하고 잊힌 꿈이다.
소파에 잔뜩 웅크린 채 상옥이 커피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한다. 맞은편 침대에는 정옥이 잠들어 있다. 진작 일어난 언니는 커피 한 잔을 다 마셔가지만, 정옥은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상옥이 정옥에게 손을 뻗친다. 끙, 소리 내며 돌아눕는 정옥. 상옥이 일어나 그녀의 얼굴을 향해 자리를 옮긴다. 낮은 소리로 그녀가 묻는다.
"얘, 정옥아! 꿈을 꾸는 거니?!"
꿈은 무엇인가?!
인생을 꿈에 빗댄 작품 가운데 <햄릿>은 압권이다. 3막 1장에서 햄릿이 혼잣말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죽는다는 것은 잠자는 것이다.
잠자는 것은 필경 꿈을 꾸는 것이리라."
죽음과 잠과 꿈을 동렬에 놓고 사유하는 셰익스피어의 인식은 가히 놀랄만하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 자면서 우리는 날마다 죽음과 얼굴을 마주한다. 잠에서 만나는 꿈은 우리를 망상의 허방다리로 인도하지만, 그 또한 무상을 강조할 따름이다. 꿈에서 인간의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을 도출해낸 자들의 탁견은 그래서 경이롭다.
'호접지몽(胡蝶之夢)'에서 장주(莊周)는 꿈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훌훌 뛰어넘는다. 꿈속의 나비가 자신인지, 꿈에서 깨어난 자신이 장주인지 명확하게 분간하지 못하는 장자. 장자의 이야기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색과 공의 무분별, 즉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만난다. 분별과 무분별의 아득한 경계마저 사유하고 수용하는 관자재보살.
상옥이 영화감독 재원에게 받은 문자 메시지를 크게 웃어버림은 무분별에서 분별로 이동하는 절정이며, 그녀에게 할애된 시공간과 운명의 명징한 확인이다. 그녀가 인사동에서 꾸었던 몽롱한 꿈과 기획의 파탄은 문득 그녀에게 깨우침을 던진다. '그래, 모든 게 꿈일 뿐이야!' 하지만 동생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꾸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