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방송된 KBS <다큐 인사이트> '다큐멘터리 국가대표'편.
KBS
'이퀄 플레이, 이퀄 페이(equal play equal pay)'.
미국 여자 축구대표팀 주장 메건 라피노의 감동적이고 혁명적인 구호다. 세계 여자축구의 간판스타인 메건 라피노는 지난 2019년 팀 동료들과 미 축구연맹을 대상으로 남성 선수들과 같은 '동일경기 동일임금'을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에 앞서 여성혐오와 인종차별로 악명 높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초청마저 거절했던 메건 라피노가 남자 축구 선수들과 비교해 무려 10% 수준인 여자선수들의 임금을 인상하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
제작진도 그런 구조적 문제를 놓칠 리 없었다. 박세리 한국 여자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은 '이퀄 플레이, 이퀄 페이'를 뛰어넘어버린 선구자라 할 수 있었다. 1998년 US 오픈 우승 이후 신화를 써내려간 박세리 감독은 이후 2019년 기준 6배가 차이 나는 미국과 달리 여자골프 대회의 상금을 남자대회보다 올려놓은 장본인이자 성별 장벽을 무너뜨린 이른바 '게임체인저'였다.
이처럼 '이퀄 플레이, 이퀄 페이'에 대한 좋은 예를 환기시킨 제작진은 이후 스포츠계에 만연한 구조적 차별을 다각도로 언급한다.
먼저 희귀한 여성 지도자 문제다. 현재 하계올림픽 국가대표 감독 중 여성은 여자탁구 현정화 감독과 여자농구 전주원 감독 단 둘 뿐이다. 시야를 스포츠계 전체로 넓히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2020년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체육지도자 중 남성은 무려 2만 2213명인데 여성은 4386명에 그쳤다. '코치는 성별 균형을 대표해 선발하며 IOC 집행위원 등은 기존 30%를 넘어 남녀 동일 비율이 되어야 한다'는 2018 IOC 성평등 리포트와는 동떨어진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올림픽팀을 2회나 이끈 박세리 감독은 골프계 후배들이, 스포츠계 전체 여자 선수들이 응원하는 독보적인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왜 그럴까. 어렵지 않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롤모델 자체가 희박하다. 미디어의 차별적, 여성혐오적 시선이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 데 큰 몫을 했다는 제작진의 시각은 재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아시아의 인어 최은희, 탁구여신 현정화, 시드니 올림픽 얼짱 공기소총 강초현, 런던의 양궁여신 기보배,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 배구 미녀군단' 등등.
"남자선수들이 유독 더 많이 방송에 보이고 노출이 됐었던 것 같다"는 박세리 감독이나 "항상 미녀군단을 붙입니다, 미남군단이라고는 안 하잖아요"라는 김연경 선수 모두 그런 시선의 피해자일 수 있었다. 또 그런 남성적인 시선은 여자선수를 타자화시키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해왔던 것이다.
참으로 오래된 편견이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 박사조차 "여자가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은 추하고 상스럽고 부적절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근대올림픽 출범 이후 100여 년이 넘는 동안 여성선수들은 그런 차별적 시선에 맞서왔고, 김연경 선수, 박세리 감독을 비롯한 6인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제작진이 길어올린 몰상식하고 차별적인 미디어의 질문들은 가히 폭력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더 많은 분야를 할 수 있어요. 안 하고 찾지 못하고 시도를 안 했을 뿐 모든 것이 가능해요"라던 '게임 체인저' 박세리 감독의 자신감 넘치는 조언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자선수들에게, 여성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제작진의 사려 깊은 메시지는 끝까지 계속됐다. 제작진은 방송 말미 1948년 런던올림픽 당시 52명 선수단 중 유일한 여자선수였던 '등 번호 984번' 육상 투원반 박봉식 선수를 필두로 올림픽에서 최초를 기록한 자랑스러운 여자선수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찬찬히 비췄다. 이들 모두 시도조차 어려웠던 종목에 뛰어들어 세상을 바꾼 '게임체인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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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