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최장수 외국인 선수인 애런 헤인즈가 최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헤인즈는 지난 23일 자신의 SNS를 통해 장문의 글을 올리며 공식적으로 은퇴를 밝혔다. 여기서 헤인즈는 "KBL은 내게 기회를 준 곳이다.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하다"면서 자신이 몸담았던 팀들을 일일이 나열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헤인즈는 KBL 무대서만 13시즌을 활약한 프로농구 최장수 외국인 선수다. 2008-2009시즌 서울 삼성 유니폼을 입고 한국 무대에 도전한 헤인즈는 울산 현대모비스와 창원 LG, 서울 SK, 고양 오리온, 전주 KCC 등을 거치며 10개구단중 절반이 넘는 6개팀의 유니폼을 입었고 가는 팀마다 꾸준한 활약으로 국내 농구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헤인즈는 정규리그 통산 546경기에서 1만 878득점 4,442리바운드 1,764어시스트, 475블록슛을 기록했다. 특히 득점부문에서는 외국선수로는 최초로 통산 1만점을 돌파했고 한국농구의 전설인 서장훈(1만3231점)에 이어 2위에 올라있다. 외국인선수 중 통산 500경기 출장-1만 득점을 동시에 돌파한 선수는 오직 헤인즈가 유일하다.
우승반지도 각기 다른 팀에서 3개나 획득했다. 2009-2010시즌 울산 현대모비스(당시 모비스)와 2015-2016시즌 고양 오리온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했고, 2017-2018시즌 서울 SK에서는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며 플레이오프에서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챔프전 우승 이후 구단이 헤인즈의 공로를 인정하며 비공식적으로 우승반지를 선사하기도 했다. 꾸준한 활약상과 누적기록을 인정받아 2017년에는 KBL이 출범 20주년을 맞아 선정한 '레전드 12인'에서 외국선수로는 조니 맥도웰(대전 현대/전주 KCC)과 유이하게 헤인즈가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사실 KBL 데뷔 당시만 해도 헤인즈는 크게 주목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이 점은 그와 함께 KBL 레전드 12인에 선정된 맥도웰과도 유사하다. 하지만 낮은 순위(2라운드 19순위)라도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었던 맥도웰과 달리, 헤인즈는 2008-09시즌 에반 브락의 대체선수로 처음 한국땅을 밟았다.
당시만 해도 KBL의 외국인 선수 트렌드는 언더사이즈라도 힘이 좋고 골밑플레이에 능한 정통빅맨을 선호하는 분위기였고, 당시 삼성에는 최고의 외국인 선수였던 테렌스 레더가 있었기에 헤인즈의 위상은 레더의 휴식시간을 벌어주는 백업멤버에 불과했다. 헤인즈는 장신임에도 체구(199cm, 88kg)가 왜소한 데다 파워나 운동능력이 그리 뛰어나지도 않았던 탓에 저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헤인즈는 KBL의 외국인 선수 트렌드를 바꾸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헤인즈에게는 운동 능력이나 개인 기량에만 의존하는 다른 외국인 선수들과는 차별화되는 뛰어난 농구 센스와 적응력이 있었다. 탁월한 1 대 1 능력과 중거리슛 능력, 이타적인 플레이와 넓은 시야, 상대의 수비 전술과 KBL의 심판콜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영악한 농구지능은 헤인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KBL 초창기에는 정식 지명을 받지못하고 대체선수로 이팀저팀을 전전하는 저니맨 신세를 면치못했지만 가는 팀마다 항상 제 몫을 해주면서 외국인 선수교체를 검토하는 팀에는 항상 '대체 1순위'로 거론될만큼 위상이 차츰 높아졌다. 헤인즈 이후 빅맨만이 아니라 다양한 기술을 겸비한 테크니션형 외국인 선수들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여러 팀을 거친 헤인즈지만 총 6시즌으로 KBL 커리어의 절반을 함께했던 서울 SK 시절(2012-15시즌 1기, 2017-20시즌 2기)시절이 가장 최전성기로 꼽힌다. 이전까지는 주로 교체 선수로 여러 팀을 떠돌아다니며 실력은 출중하지만 1옵션이 되기에는 뭔가 아쉬운 '저니맨' 취급을 받았다면, SK에서는 문경은표 '포워드 농구'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마침내 리그 최고 선수로 각성했다.
SK 문경은 감독과 헤인즈의 남다른 케미는 지금도 KBL 역사상 감독과 외국인 선수의 가장 유명한 조합으로 이름을 남겼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합친 '문애런(문경은 감독에게는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지만)'이라는 별명이 유행할만큼 국내 감독과 외국인 선수의 가장 이상적인 콤비 사례로도 꼽힌다.
헤인즈는 농구적인 면외에도 적응력이 뛰어났고 국내 선수들과의 친화력도 우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헤인즈는 부상으로 재활기간에도 선수단과 동행하면서 국내 선수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하거나 사우나를 함께 즐기기도 하고, 후배 외국인 선수들의 적응을 돕는 멘토 역할을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들이다. 헤인즈는 "연장자에게 항상 먼저 인사를 해야하는 한국문화"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사실을 고백하면서도 "적응이 어렵지는 않았다. 국내 선수들과 융화되는 것에 많은 고민을 했다"는 사실을 한국에서의 성공비결로 고백한바 있다.
물론 항상 좋은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013년 KCC와의 경기도중 상대선수인 김민구를 고의적으로 가격하여 징계까지 받았고 엄청난 비난에 시달리며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부산 KT와의 경기에서는 상대 코칭스태프에게 한국어로 욕설을 했다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한국무대에서 오랜 시간을 활약하면서 적응도 뛰어났던 만큼 헐리우드 액션이나 심판판정을 활용하는 기술이 영악해졌다는 비판도 받았다. 헤인즈는 여론의 비판에 대하여 자신의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했고, 변화된 모습과 꾸준한 활약으로 팬들의 마음을 다시 돌리는데 성공했다.
어쩌면 헤인즈는 라건아보다 앞서서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국가대표로 뛸수도 있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농구협회는 대표팀 전력강화를 위하여 헤인즈의 귀화를 검토했으나 협회의 규정숙지 미숙으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이 정한 귀화자격에 미달된다는 것이 알려지며 없던 일이 됐다. 당시 대표팀 합류를 위하여 다른 리그의 제안도 거절했던 헤인즈는 큰 실망감을 감추지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팀은 헤인즈 대신 문태종을 선발하며 2014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는데 만일 그때 문태종이 아니라 헤인즈가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것도 농구팬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헤인즈는 어느덧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2020-21시즌 후반기 KCC에 대체선수로 합류하며 소속팀의 정규리그 우승와 챔프전 진출에 힘을 보탰다. 비록 챔프전에서는 제러드 실런저을 앞세운 안양 KGC의 벽을 넘지못하고 커리어 마지막 통합우승에는 아쉽게 실패했다. 하짐지만 적지않은 나이에도 출전시간마다 제몫을 다해주며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준 헤인즈의 노장투혼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헤인즈는 국적이 다른 외국인 선수도 단지 스쳐가는 용병이 아니라, 한국농구의 레전드가 될수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헤인즈가 보여준 투철한 프로의식, 뛰어난 적응력, 농구와 타 리그에 높은 이해도는 국내와 외국선수들, 그리고 팬들에게도 큰 귀감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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