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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

21.07.05 10:04최종업데이트21.07.0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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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오 년을 산 엄마의 삶을 정리하는 일은 어려웠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을 걷어내야 하는 일이기에. 이사할 때마다 버린다고는 했지만 미처 버리지 못하고 이삿짐에 함께 달려온, 살림살이가 대부분인 엄마의 물건들 앞에서 나는 막막했다. 이것들을 정리할 수 있을까? 사실은 버린다는 말이 맞을지 모르는 작업 앞에서 엄마의 물건을 버리는 것이 마치 엄마를 버리는 거 같아 오래 머뭇댔다.
 
옷장에는 몇 년에서 몇 십 년을 아우르는 옷들이 빽빽이 꽂혀 있고, 찬장에는 문을 열면 쏟아져 나올 만큼 그릇이 가득 차 있다. 냉장고에는 만들어 놓고는 잊어버려 먹지 못하고 남은 음식들이 그득했고, 다용도실에는 김치 담글 때 쓰던 큰 대야와 채반들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이 짐들을 다 어찌해야 하나 하는 막막함과 버리자니 애달픈 복잡한 감정 속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숨으로 반나절을 보냈다.
 
결국 엄마의 대부분의 물건들은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중 고르고 또 고른다고 솎아냈어도 승용차 트렁크가 모자랄 만큼 엄마의 물건이 남았다. 값비싼 물건은 아니어도 이건 이래서 애틋했고 저건 저래서 소중한 것들이었다. 엄마가 가족 각각에게 솜씨 좋은 손뜨개로 짜준 겨울 스웨터와 조끼, 손때 묻은 투박한 뚝배기와 지금은 보기 힘든 스텐 쟁반, 오래된 돋보기,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주소가 적힌 헤진 수첩. 엄마의 유품이랄 수 있는 이것들은 엄마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 걸까?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유품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의 한 장면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의 한 장면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은 유품정리라는 생소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망자의 집을 정리하는 직업이 있고 이를 기록한 책이 나왔다고 들었는데, 드라마 <무브 투 헤븐>이 이 생소한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유품 정리사라는 품위 있어 보이는 이름과 달리, 그들의 작업은 3D업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험한 일이다. 작업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는 대부분 유품을 정리할 유족이 없거나 유족이 있어도 직접 유품 정리하기를 꺼리는 경우다.
 
유품 정리사라 불리는 '무브 투 헤븐'의 직원은 아버지(지진희)와 아들 그루(탕준상)이다. 이들은 유품 정리 의뢰를 받은 집에 들어서 작업 전 먼저 망자의 영혼에 정중하고 깊은 인사를 보낸다. "00님의 마지막 이사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깍듯한 알림으로 정리를 시작하는 이들의 손길엔 진심이 묻어난다. 쓰레기를 처리하러 온 거친 손길이 아니라 망자의 마지막을 애도하는 수굿함 때문이다. "유품을 잘 들여다보면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이들의 태도는 망자를 죽어서도 평가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공감받을 자격 있는 존재로서 위치시킨다. 누구라고 이런 마지막을 기대하지 않겠는가.
 
이들이 의뢰받은 망자들의 흔적은 하나같이 비통하다. 홀로 작업장을 점검하다 기계에 끼어 다쳐 끝내 이로 인한 파상풍으로 죽음에 이른 가난한 비정규직 젊은이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스러져가는 사회적 살인을 강렬히 소환한다. 숙소인 고시원 방에 덩그러니 남겨진 삼각 김밥 포장지와 컵라면은 그가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니라 인스턴트 음식으로 허겁지겁 배를 때운 결핍이, 휴대용 손톱깎이와 방향제는 작업장에서 밴 찌든 냄새를 지우고 싶었던 고달픈 청춘의 지문이 남아있다. 누가 이 청년들에게 고작 이런 유품을 남기게 했는가.
 
스토킹으로 살해당한 망자의 유품은 그가 얼마나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지를 가늠하게 한다. 자신의 집조차 안전하지 못해 불안에 떨던 그는 왜 법과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집에서 살해당해야 했을까. 치매를 앓다 고독사한 노인에게선 죽어서도 떨치지 못했던 애면글면한 모성이, 성소수자였던 망자에게선 타인의 사나운 눈길을 이겨내지 못해 포기한 사랑에 대한 미련이, 유품 갈피갈피에 꽂혀 있다.
 
그렇기에 이들 망자의 못다 한 이야기에 하나하나 귀 기울이며 해독해 나가는 진심은 그루와 아버지가 행하는 최선의 애도가 된다. 마지막 이야기를 마친 망자들은 유품 정리사들의 진실한 위로와 함께 안식을 얻게 될 것이다. 이들의 존엄한 손길은 문득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던 내 막막함과 쓸쓸함을 오버랩 시키며, 이런 극진함이라면, 나도 엄마의 유품 정리를 부탁하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생각은 조금 더 나아가 엉뚱하게도, 내가 죽은 후를 의뢰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스퍼거 증후군 "모자란 게 아니라 특별한 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무브 투 헤븐>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무브 투 헤븐>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유품 정리 일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한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인데, 조금 더 특이한 것은 아들 그루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손원평 작가의 소설 <아몬드>의 주인공 선재와 기후 위기에 처한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경고 알람을 발신하고 있는 그레타 툰베리를 환기시킨다.
 
그루가 가지고 있는 아스퍼거 증후군은 작게 타고난 편도체가 만드는 발달 장애다. <아몬드>의 주인공 선재의 표현을 빌자면,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감정이란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선재는 반복되는 학습으로 사람이 가지는 감정을 습득하려고 노력하고 일정의 성취를 이룬다. 그렇다고 온전한 인간의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이냐고 재우친다면, 다른 질문을 함께 던져야 할 것이다. 정상이라고 간주되는 인간의 감정은 정말 위해하지 않느냐는 물음말이다.
 
정상으로 분류되는 인간의 감정이 타인 혹은 가까운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해를 가하고 있는가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참혹한 사건들로 충분히 설명될 것이다. 그리고 공감 능력이 썩 괜찮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중에도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편재해 있음을 목도할 때, 인간의 기본이라 여겨지는 공감 능력이 과연, 사회를 선하게 움직이는 데 유효하게 작동하는 것인지 되묻게 된다.
 
공감이라는 것이 고작, 내가 아는 세계의 내가 아는 사람만을 이해하고 위하는 것으로 편협하게 범위를 좁힐 때, 이는 오히려 배타적 이기심으로 돌변해 나와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타인에게 서늘한 비수를 들이대게도 한다. 그러고는 아주 말간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왜 노력해서 죽음을 피하지 않았느냐고, 때로는 사회적 타살인 죽음 앞에서도 망자를 서슴지 않고 질책할 수 있게 한다. 이런 면에서 공감이란 전혀 타고난 감정의 영역이 아니며 오히려, 학습으로 이루어야 하는 고도의 지적인 능력이며, 이는 부단한 노력으로 성취해 가는 도전의 영역이 된다.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외면하지 않고 톺아보려는 노력 말이다.
 
<아몬드>의 선재처럼, <무브 투 헤븐>의 그루 역시 학습을 통해 공감 능력을 습득해 나간다. 그루가 유품을 정리하며 비록 망자이지만 타인의 감정에 이입해 가는 과정은 오히려 정상인의 공감 능력을 초과한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 유품이 남긴 메시지를 한 조각 한 조각 끼워 맞춰 못다 한 망자의 이야기를 추리해 나가는 과정은 진지한 감동을 던진다. 정상이라 간주되는 영악한 보통 사람들이 과연, 타인 혹은 망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 이토록 공들여 본 적이 있을까? 그렇기에 그루의 노력은 역설적으로 탁월한 능력으로 전환된다. 비록 누구나 열망하는 슈퍼파워는 아니지만, 억울한 혹은 허망한 죽음에 이른 망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끝끝내 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지는 탐욕으로 얼룩진 인간의 추한 본성을 초월하는 존엄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루는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와 한 약속을 새기며 변함없는 모습으로 망자와 접촉한다. 망자의 얘기를 듣고 그들이 발신한 메시지의 수신처를 찾아가는 그루의 끈질김은 세상이 포기하지 말아야 할 태도를 진실되게 보여준다. 이로써 점차 명징하게 드러나는 진실은 그루의 아스퍼거 증후군은 장애가 아니라 존재의 다른 상태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레타 툰베리가 온몸을 북처럼 울리며 세상을 향해 외치는 것처럼, 그루의 노력도 그러하다. 누가 이들의 작은 편도체를 감히 장애라 말할 수 있는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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