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무브 투 헤븐>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유품 정리 일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한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인데, 조금 더 특이한 것은 아들 그루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손원평 작가의 소설 <아몬드>의 주인공 선재와 기후 위기에 처한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경고 알람을 발신하고 있는 그레타 툰베리를 환기시킨다.
그루가 가지고 있는 아스퍼거 증후군은 작게 타고난 편도체가 만드는 발달 장애다. <아몬드>의 주인공 선재의 표현을 빌자면,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감정이란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선재는 반복되는 학습으로 사람이 가지는 감정을 습득하려고 노력하고 일정의 성취를 이룬다. 그렇다고 온전한 인간의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이냐고 재우친다면, 다른 질문을 함께 던져야 할 것이다. 정상이라고 간주되는 인간의 감정은 정말 위해하지 않느냐는 물음말이다.
정상으로 분류되는 인간의 감정이 타인 혹은 가까운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해를 가하고 있는가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참혹한 사건들로 충분히 설명될 것이다. 그리고 공감 능력이 썩 괜찮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중에도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편재해 있음을 목도할 때, 인간의 기본이라 여겨지는 공감 능력이 과연, 사회를 선하게 움직이는 데 유효하게 작동하는 것인지 되묻게 된다.
공감이라는 것이 고작, 내가 아는 세계의 내가 아는 사람만을 이해하고 위하는 것으로 편협하게 범위를 좁힐 때, 이는 오히려 배타적 이기심으로 돌변해 나와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타인에게 서늘한 비수를 들이대게도 한다. 그러고는 아주 말간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왜 노력해서 죽음을 피하지 않았느냐고, 때로는 사회적 타살인 죽음 앞에서도 망자를 서슴지 않고 질책할 수 있게 한다. 이런 면에서 공감이란 전혀 타고난 감정의 영역이 아니며 오히려, 학습으로 이루어야 하는 고도의 지적인 능력이며, 이는 부단한 노력으로 성취해 가는 도전의 영역이 된다.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외면하지 않고 톺아보려는 노력 말이다.
<아몬드>의 선재처럼, <무브 투 헤븐>의 그루 역시 학습을 통해 공감 능력을 습득해 나간다. 그루가 유품을 정리하며 비록 망자이지만 타인의 감정에 이입해 가는 과정은 오히려 정상인의 공감 능력을 초과한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 유품이 남긴 메시지를 한 조각 한 조각 끼워 맞춰 못다 한 망자의 이야기를 추리해 나가는 과정은 진지한 감동을 던진다. 정상이라 간주되는 영악한 보통 사람들이 과연, 타인 혹은 망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 이토록 공들여 본 적이 있을까? 그렇기에 그루의 노력은 역설적으로 탁월한 능력으로 전환된다. 비록 누구나 열망하는 슈퍼파워는 아니지만, 억울한 혹은 허망한 죽음에 이른 망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끝끝내 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지는 탐욕으로 얼룩진 인간의 추한 본성을 초월하는 존엄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루는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와 한 약속을 새기며 변함없는 모습으로 망자와 접촉한다. 망자의 얘기를 듣고 그들이 발신한 메시지의 수신처를 찾아가는 그루의 끈질김은 세상이 포기하지 말아야 할 태도를 진실되게 보여준다. 이로써 점차 명징하게 드러나는 진실은 그루의 아스퍼거 증후군은 장애가 아니라 존재의 다른 상태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레타 툰베리가 온몸을 북처럼 울리며 세상을 향해 외치는 것처럼, 그루의 노력도 그러하다. 누가 이들의 작은 편도체를 감히 장애라 말할 수 있는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