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신작 <인트로덕션>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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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가 한의사인 아버지를 찾아간다. 한의사는 무엇인가 깊은 고뇌와 고통으로 괴로운 심경이다. 곤경을 벗어나려는 그는 하느님에게 금전적 보상을 제시하면서 난관을 피해 가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무엇 때문에 저토록 절실하게 두 손을 모으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영호는 입학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처럼 보인다.
영호를 맞이하는 인물은 아버지가 아니라 간호사다. 화들짝 반기는 그녀 얼굴에 웃음이 환하게 번진다.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는 말에 위로를 받는 영호.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온통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린 듯하다. 반백의 머리를 한 사내가 한의원 계단참에서 맛있게 담배를 피운다. 특별한 일도 없어 보이는 그를 한의사가 반갑게 맞이한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영호. 하지만 아버지는 감감무소식이다. 만나자고 먼저 전화한 사람은 아버진데, 그의 마음속에는 아들이 없다. 기다리다 못해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영호. 거리에 함박눈이 내린다. 그를 따라 나온 간호사를 안아보는 영호. 어긋나고 일그러진 기대치를 눈과 포옹에서 찾아보려는 여린 영혼의 영호.
두 번째 이야기: 연인을 찾아가다
주원이 어머니와 함께 베를린 주택가에 도착한다. 그들은 겨울에도 푸르게 자라는 겨우살이를 보고 찬탄한다. 그들의 관심은 주원의 유학과 숙박에 도움을 줄 화가에 쏠려 있다. 어머니는 딸과 대화하면서 줄곧 담배를 피운다. 주원은 어머니와 서먹서먹해 보인다. 이윽고 나타난 화가는 주원에게 이것저것 묻는다. 주원은 의상을 공부하려고 한다.
학부 전공과 다른 공부를 둘러싼 두 사람의 대화는 겉돌고, 어색한 양상까지 보인다. 베를린의 '슈프레강' 근처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는 세 사람. 특별한 것도 없는 이야기가 오가는데, 주원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영호가 느닷없이 나타난 것이다. 그의 출현은 인과성은 물론 최소한의 우연성마저 낯설게 여겨지는 횡설수설이다.
새로운 환경과 전공 그리고 어머니 친구라는 화가의 놀라운 미모와 지나친 친절. 그것이 불러온 낯설고 두려운 마음의 풍경을 읽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등장하는 영호. 베를린 거리에서 주원을 안아주는 영호. 그녀를 안아주지만, 그에게도 해소되지 않는 앞날의 두려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의 포옹에는 두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쓸쓸함이 교차한다.
세 번째 이야기: 어머니를 찾아가다
그곳은 강릉이어도 속초라도 좋다. 동해와 파도가 있는 강원도 횟집. 중년 남녀가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신다. 여성의 입에서 아들이 거의 다 왔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연극배우에 관한 것이다. 중년남성은 첫 번째 이야기에 나온 유명 배우다. 그들이 어떤 인연으로 동해의 허름한 횟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는지 우리는 모른다.
친구인 정수와 함께 도착한 영호. 네 사람이 함께하는 술자리와 대화는 흥미롭고 역동적이다. 역시 홍상수 영화에는 술이 들어가야 하나 보다. 문제는 영호가 거절했던 키스 장면을 둘러싼 충돌이다. 연인을 생각하면서 키스 장면이 들어있는 영화 배역을 끝내 거부했다는 영호. 사랑도 없이 여자를 포옹하는 행위에 대한 영호의 거부감.
<인트로덕션>에서 유심히 들여다본 대목은 여기다. 아무 감정 없이 여자를 안는 것에서 죄책감을 느낀다는 영호. 그것을 격렬하게 반박하며 공격하는 연극배우. 모든 포옹과 사랑에는 분명 그 나름의 의미와 아름다움이 있다고 주장하는 배우. 아마 그의 말은 여배우와 자신을 향해 세상이 쏟아내는 각종 독설에 대한 홍상수의 격정 토로 아닐까.
백설과 강물 그리고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