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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 보며 울던 나, 이 선수 때문이다

'인생의 축소판' 같은 경기 보여준 삼성생명 김보미 선수에 박수를 보내며

21.03.16 18:01최종업데이트21.03.1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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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왜 여자 농구를 보면서 울어?"

평소 NBA(미국 프로농구) 만 보던 내가 WKBL(한국 여자프로농구) 경기를 보며 울고 앉아있자 아내가 물었고 나의 대답은 이랬다. 

"이게 스포츠가 아니라 인생의 축소판이야. 나도 처음에는 그저 한 선수의 인생 스토리에 매료되어 한 경기만 보려고 했었어."
 
그 선수의 이름은 삼성생명 블루밍스 소속의 김보미이다. 17년간의 선수 생활 동안 4번의 수술을 마치고 맞이한 2021년에 그녀는 36세가 되었다. 그 기간 동안 그녀가 남긴 기록은 평균 득점 6점이었다. 그녀는 이제 농구가 지긋지긋하다며 시즌 전 후배들과 팀에 은퇴 의사를 전달했다. 누구 하나 주목하지 않는 만년 후보 선수의 은퇴 시즌이었다.
 
손대범 해설위원의 말로 그녀의 플레이 스타일을 짐작 할 수 있다.

"블루밍스 경기에서 공이 흐르고 쿵 소리가 나면 여지 없이 김보미 선수가 쓰러져있습니다."

소아암 환자에게 머리카락을 기부해 아무렇게나 흩날리는 단발로 강백호처럼 몸을 던진다. 핵심 선수의 부상으로 찾아온 주전의 자리를 온 몸으로 지켜냈고 팀은 4위로 플레이오프에 턱걸이했다. 그렇게 맞이한 플레이오프에서 김보미와 팀은 정규리그 1위 팀을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여기까지도 기적이라고 했고 팬들도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챔프 전 상대인 KB의 외곽에는 리그 최고의 3점 슈터 중 하나인 강아정이, 골 밑에는 득점, 리바운드 등 7관왕을 차지한 MVP 박지수가 버티고 있었다. 박지수는 역대 한국농구 최고 센터의 계보를 잇고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골리앗이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시리즈가 KB의 압승으로 마무리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WKBL 역사는 4위 팀의 챔프전 우승을 단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다.

블루밍스의 나머지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절대열세가 두드려져 보인다. 김보미와 동갑내기인 혼혈선수 김한별은 출중한 기량으로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지만 다혈질로 경기의 흐름을 끓는 경우가 많았고, 주장 배해윤은 경기 내내 차분한 플레이를 펼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어이없는 실수로 무너지곤 했다. 무엇보다 골 밑을 지켜야 할 두 선수는 박지수 선수보다 20센티나 작았다. 30대 언니들을 보좌할 2대 선수로는 한 때 농구천재로 불리다 부상에서 돌아온 윤예빈 정도가 있었지만, 큰 경기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다.

그러나 선수들이 능동적인 사고로 농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지론을 가진 임근배 감독이 있었다. 몇 년째 우승권과 거리가 먼 임근배 감독의 지도 방법은 한국 농구 현실에 맞지 않는 꿈 같은 소리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이제 선수를 존중하는 감독과 그 믿음에 보답하려는 선수들이 승리한다면 드라마는 완성된다.

단 하나의 문제는 절대적인 전력 차였다. 그러나, 챔프전이 시작되자 30대 언니들이 저세상 텐션으로 코트를 누비자, 20대 동생들이 잠재력을 폭발했다. 그들은 능동적인 플레이로 시리즈 1,2 차전을 잡았다. 다혈질 김한별은 냉정한 에이스로, 승부처에 약했던 배해윤은 해결사로, 한때 농구천재 윤해빈은 게임을 하면서 농구에 눈을 떴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역시 김보미였다. 눈빛부터 다른 선수들과 달랐다. 상대를 압살하겠다는 투쟁심을 넘어선 인생을 버텨온 자의 어떤 것이 보였다. 화려한 기술이 없는 김보미는 조카뻘 되는 상대 선수들과 루즈 볼을 잡기 위해 코트 위에 쿵 소리를 내며 연이어 몸을 던졌다.

그러나 선수 생활 대부분 10분 이하의 플레이 타임을 뛰던 김보미는 30분 이상을 뛸 수 있는 경기 체력이 부족했고, 요령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뛰다 보니 경기 중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김보미 선수의 대부분의 사진 기사는 울거나 고통스러워 하며 쓰러져 있는 것들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만들기로 작정한 사람들처럼 양 팀은 2승 2패로 승부의 균형을 맞추었다. 하루걸러 치러지는 경기 일정에 지치기는 KB선수단도 마찬가지였다. 4경기 중 2번의 연장전을 치르는 그야말로 대혈전을 치른 양 팀은 15일 최종 5차전을 앞두게 되었다. 이제는 어느 팀이 우승을 해도 WKBL의 새 역사가 쓰여지게 되었다.

최초의 정규리그 4위 팀 우승이냐. 최초로 2패 후 3연승의 역 스윕 우승이냐. 5차전 경기 전 김보미 선수의 인터뷰에 나는 또 다시 눈물을 흘리고 말았고 시리즈가 끝나 기사를 쓰는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경기가 될 겁니다."

나는 월드컵 결승을 보듯 WKBL 최종전을 지켜보았다. 김보미 선수는 그녀의 마지막 경기에도 여지없이 몸을 던졌다. 아니 이제는 그녀뿐만 아니라 코트 위의 모든 선수가 날아올랐다. 코트 위에는 10명의 김보미가 있었다. 캐스터는 그런 선수들의 플레이가 나올 때 마다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멘트를 했다.

"아….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경기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리고 경기 중반 승부의 분기점이 되는 플레이가 일어났다. 블루밍스의 슛이 링을 맞고 KB 선수의 손으로 안착하려는 순간이었다. 화면이 갑자기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들며 3점 라인 밖에서부터 김보미 선수가 공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순식간에 공을 낚아채 슛을 성공 시키고 코트에 또 쓰러졌다.

승부처임을 직감한 상대 감독이 작전타임을 요청했다. 김보미 선수는 동생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다 작전타임 벨 소리를 듣고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다시 쓰러졌다. 손대범 해설위원도 본분을 망각한 그러나 더 없이 적절한 말을 보탰다.

"존경합니다."

이 플레이 이후 승부의 추는 블루밍스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결국 우승은 블루밍스의 몫으로 돌아갔지만, 위대한 패자와 조금 더 운이 따랐던 승자만이 존재하는 시리즈가 막을 내렸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수 많은 국내 남자 농구 경기를 봐 왔고, 선수 개인의 연봉이 수백억에 이르는 화려한 NBA를 보면서도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동을 WKBL을 통해 느꼈다. 우승 세레머니 도중 임근배 감독은 선수들에게 큰 절을 했고, 김보미 선수는 동료들의 헹가래를 받으며 가장 높은 곳에서 자신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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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걸스 김보미 WKBL 여자농구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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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직 안 죽었다. 출간 찌라시 한국사. 찌라시 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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