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7 >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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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스코필드는 참전 전 가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 전투와 임무에서 보이는 모습에는 단순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이전에 받았던 훈장을 단순히 '목이 말라서' 프랑스 군 장교의 와인 한 병과 교환했다는 말조차 그가 반드시 생존해야만 하는 어떤 이유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그는 결코 지치지 않는다. 그가 가장이었던 장면을 뒷받침하는 간접적인 장면이 있다. 스코필드는 독일군의 공격에 잠시 기절했다가 어느 다락 장애 숨어들어간다. 그곳에서 독일 여성과 아기를 만난다. 언뜻 보면 불필요한 이 장면에 감독은 꽤나 많은 영화적 시간을 할애한다. 스코필드는 마치 자신의 아이를 마주한 듯 보인다. 그래서 아이에게 목장에서 담았던 우유를 모두 주고, 군장을 털어먹을 것을 여인에게 건네 준다. 늦은 밤이 지나 새벽의 해가 뜰 때 스코필드는 여인의 만류를 뒤로하고 다시 뛰기 시작한다.
< 1917 >이 이룩한 가장 큰 성과는 스토리텔링이다. 이 스토리텔링에는 화려한 CG나 시기적절한 편집이 배제되어 있다. 대신 캐릭터들이 행동이 스토리의 당위를 뒷받침하며 뛰어가고 그 뒷모습을 카메라가 롱테이크로 좇아간다.
이 부분이 가장 빛나는 성취를 이루는 부분은 블레이크와 스코필드가 참호 속을 역주행하는 부분이다. '간다'에는 직선과 순행의 의미가 있다. 모두가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최전선으로 향하는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는 '가지'않고 '거슬러 간다'. 블레이크가 죽은 이후에도 스코필드는 거슬러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가 자의적으로 거슬러가지 않는 경우는 강물 흐름에 몸을 맡겨 흘러가는 상황뿐이다. 강 위에 쓰러진 나무 앞에서 스코필드의 여정은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데번셔 연대를 만난 것이다. 하지만 그 부대는 후속 부대일 뿐, 명령서를 전달해야 할 매켄지 중령은 최전선에 있고 돌격명령이 내려지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스코필드는 마지막 역주행을 시작한다.
< 1917 >은 전쟁을 설명하는 영화가 아니다.. 샘 멘데스는 <아메리카 뷰티>부터 이어진 그의 오래된 장점을 살려
< 1917 >을 통해 전쟁을 '형상화'했다. 미국 영화의 가족주의적이고 전형적인 태도, 이를테면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으로 규정하고 예상되는 결말로 관객을 유도하지 않았다. 미국 자본을 등에 입은 영국인 감독으로서 샘 멘데스가 취하는 전쟁에 대한 그의 태도가 여타 전쟁영화와 다른 이유는 그 때문이다. 감독은 스토리를 짜고, 배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전력질주하게 한 뒤, 카메라가 그 뒤를 쫓는다. 단순해 보이지만 롱테이크 기법으로 전체적인 과정을 부드럽게 연결한 목적은 상황에 대한 관여가 아닌 전시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평지에서 일어나 참호를 거슬러 땅 밑과 땅 위, 강을 통해 데번셔 연대에 도착한 스코필드는 참호 끝자락의 매켄지 중령을 향해 달려간다. 공격명령은 시작되고 있고 포탄이 떨어지고 있다. 좁은 참호에는 죽은 자와 살았지만 겁먹은 자가 즐비하다. 그래서 스코필드는 선택한다. 평지 위를 달려가기로. 이 장면은
< 1917 >의 모든 장면 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데번셔 2연대의 공격명령과 동시에 스코필드는 150m를 전력질주하기 시작한다. 돌진하는 병사들의 사이를 스코필드가 횡으로 전력질주하는데 병사들과 부딪혀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스코필드의 모습은 배역이 아닌 배우의 몸을 걱정하게끔 만든다. 결국 매켄지 중령에게 도착해 에런 무어 장군의 명령서를 전달하고 전쟁 명령을 중단시키는 데 성공한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까지의 여정을 기억한다. 스코필드가 친구의 유언을 이어받아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행복한 결말 말이다. 대다수의 관객들이 흐뭇하게 이 광경을 바라보며 좋은 영화를 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그 전언을 읽는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해줘. 아직 전투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오늘은 끝날 거란 희망이 있었다. 희망은 위험한 거지. 다음 주면 다른 명령이 내려올 거다. '일출과 함께 공격하라'.이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죽는 거지"라는 스미스 장교와 매켄지 중령의 조언과 한탄 말이다. 독일군의 함정을 간파해 수천 명을 살릴 수 있었으면서도 이들은 왜 침울할까. 왜 좌절하고 있을까.
나는 스코필드의 여정을 응원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전쟁의 전황은 무언가 거대한 유기체의 움직임이다. 어쩌면 나는 스코필드가 전달하는 공격 중지 명령이 유기체의 움직임을 멈출 수 있었을 거라고 착각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스코필드의 노력은 부대의 희생을 한순간 멈추는 역할을 했을 뿐 전쟁이 초래한 어마어마한 희생을 막지는 못했다. 물론 이는 스코필드의 잘못이 아니다. 스미스 장교와 매켄지 중령은 마치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하루빨리 전쟁을 '중단'하기보다'종료'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해석된다.
블레이크의 친형을 만나 동생의 부고를 전한 스코필드의 여정은 처음 깨어났던 장소와 비슷한 평지와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며 끝난다. 나는 카메라 밖을 상상해보기로 했다. 과연 스코필드가 피로에 찌들어 나무에 기대 눈을 감았을지언정 다른 곳에서의 전쟁 역시 멈추었을까. 전쟁은 그 다음 해 1918년 11월 11일에 끝났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는 굳이 기록을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누군가의 선의가 그에 맞는 결과를 이끌어낼 때가 있다. 하지만 개인이나 소수가 아닌 대다수 전체의 동의가 없다면 그 선의가 어둠에 묻히는 경우가 있다. 이 전쟁은 후자였다. 영화 내내 목숨을 걸고 거슬러 갈 수 있는 모든 것을 거슬러 갔던 스코필드를 응원했지만 그가 결코 거슬러 '중단'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것이 내가
< 1917 >을 보며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느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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