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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 띠처럼 꼬인 '테넷'...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

[리뷰] 영화 <테넷> 현재와 미래의 주도자가 벌이는 치열한 대결

20.09.01 11:16최종업데이트20.09.0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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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테넷> 포스터
영화 <테넷> 포스터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한 방향으로 느끼고, 그 시간을 타고 점차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물리학 법칙을 따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평범한 한 사람의 입장에서 삶을 여행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한 방향의 시간을 바라본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단순한 정의를 머릿속의 관점을 통해 보면 과거에 일어난 일은 변경할 수 없고, 현재를 살면서 결정한 부분이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즉,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영역으로서 모두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미래를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과거와 미래의 중간지점인 현재 속에서 어떤 이들은 이미 일어난 과거에 더 집착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저 앞으로 일어날 미래를 준비한다. 그렇게 각자가 다르게 느끼는 현재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만약 과거의 어떤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 등장했던 다양한 시간여행 모티브의 영화에서 주인공 또는 나쁜 마음을 먹은 인물은 과거를 바꿔 현재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진다면 누구나 과거의 잘못이나 기회를 잡기 위해 과거로 뛰어들 것이다. 결국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대는 대혼란을 겪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런 시간 여행 장치도 없고,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실패는 잊고 현재에서 미래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때에는 그것이 좋은 미래를 만드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모든 시간의 중심은 바로 그 일이 벌어지는 '현재'다.

시간에 대한 영화 <테넷>
 
 영화 <테넷> 장면
영화 <테넷> 장면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테넷>은 시간에 대한 영화다. 특히, 시간 중에서도 현재와 미래가 충돌하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야기의 주된 진행은 바로 현재다. 오페라 테러 작전에 투입되었던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작전 중  마치 거꾸로 움직이는 듯한 탄환을 보게 되고, 죽음의 위기에 처하지만 의문의 단체 인물에게 구조되어 눈을 뜬다. 이 단체에서 단체의 이름인 듯한 '테넷'이라는 이름을 듣게 되고,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뒤집은 인버전 기술을 통해 미래의 특정 인물이 현재에 영향을 주려 한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은 주인공은 그 일을 막으려 한다. 그 일을 돕기 위해 모집된 닐(로버트 패틴슨)은 주인공을 도와 여러 가지 작전을 같이 수행한다. 

이야기 전개 내내 주인공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주도자'라고 불리는 주인공이 경험하는 모든 일들은 곧 관객에게 바로 전달된다. 즉, 영화의 주인공이 곧 관객이며, 주도자의 시간대를 자신의 타임라인으로 생각하고 그대로 따라가게 된다. 주도자가 현재를 주도하며 중심인물이 되는 것처럼, 관객 모두는 실제 삶에서도 현재를 주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주요 인물들이 주인공에게 전달하는 정보를 관객들도 처음 받게 되면서 영화가 전개되면 될수록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 상황에 몰입하게 되는 관객들은 바로 자신이 '주도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현재의 주인공이 미래에 밀릴 때 영화의 긴장감은 배가 되고, 현재가 앞서 나갈 때 안도감을 느낀다. 그 현재와 미래의 주도권 싸움에서 현재가 겪는 위기가 정서적 공감을 만들어낸다. 

주인공은 순행하고 있는 현재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역행하여 현재 시점으로 돌아오는 미래가 침투하고 영향을 주려는 것들을 막으려 애쓴다. 마치 우리가 현재에 미래의 어떤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과 닮았다. 현재를 주도하는 우리들은 현재 때문에 미래가 흔들리지 않도록 무던히 애쓴다. 만약 미래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징조가 있으면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는 최대한 그 일을 현재에서 막아낸다. 그러니까 시간을 주도하는 건 미래가 아니라 그 미래의 일을 준비하는 현재다. 그 주도권은 반드시 현재가 가지고 있어야 하며, 현재의 주도권을 미래에 빼앗기는 순간 현재라는 순간은 갈 곳을 잃는다.  

순행하는 현재와 역행하는 미래의 주도권 싸움
 
 영화 <테넷> 장면
영화 <테넷> 장면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주인공이 현재라는 시간을 지키는 존재라면, 악당으로 등장하는 사토르(케네스 브레너)는 미래에서 역행해 돌아와 현재를 파괴하려는 존재다. 그런데 사토르의 입장에서 본다면 본인이 실제 살고 있는 현재 즉, 주인공에게 미래인 그 시점을 지키기 위해 과거를 파괴하러 온 존재다. 과거를 변화시키는 것에 집착하는 그에게는 그의 욕심대로 그 시간을 되돌리겠다는 당위성이 있지만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위협적이고 두려운 존재다. 미래의 그에게 인버전 기술이 넘어가는 순간 현재는 길을 잃고 미래의 존재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고 만다. 그렇게 사토르 같이 개인의 신념 때문에 과거를 파괴하려는 자들을 막기 위해 '테넷'이 만들어졌으며, 그들은 결국 현재라는 시간을 지켜낸다.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인물 가운데 사토르의 아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 역시 자신을 억압하고 겁박하던 남편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인물이다. 캣은 미래를 상징하는 남편이 자신의 아들을 보지 못하게 할 미래를 두려워해 마지못해 순종하며 살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주인공을 만나고 숨겨진 사정을 알게 되면서 자신만의 복수극을 만들어가게 된다. 영화 속 캣이 아들과 보트를 타고 사토르가 있는 배로 돌아오는 장면이 있다. 캣은 그때 배에서 물속으로 뛰어들던 자유로운 여인을 동경하게 되는데, 그건 캣에게 긍정적인 미래였고 그의 부정적인 미래를 제거하면서 주도권을 가지게 된 자기 자신이었다. 그렇게 캣도 현재에 할 수 있는 것을 해 나가며 자신만의 현재를 지켜낸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에너지의 흐름에는 방향성이 있다는 물리학 법칙이다. 예를 들어 차가운 물체에 뜨거운 물체를 접촉시키면 뜨거운 물체에서 차가운 물체로는 열이 전달되지만, 반대의 과정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 <테넷> 속에는 에너지의 법칙을 역으로 거스를 수 있는 장치가 있어 이 장치를 이용해 인버전이 되면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갈 수 있다. 발사된 총알이 다시 총으로 들어와 총을 쏘기 전의 상태가 되거나, 자동차가 거꾸로 가고, 사람이 거꾸로 가는 것처럼 묘사되는 영화의 장면들은 미래의 존재들이 인버전 되어 과거로 흘러가고 있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여준다. 이런 물리학 법칙을 굳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영상을 통해 이 이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들은 이런저런 설명을 하면서도 그저 느껴보라는 이야기를 조언으로 여러 번 전달한다. 그렇게 영화를 그저 보면서 느끼다 보면 영화 속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영화가 시작한 장소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벌어지는 테러 장면이다. 영화는 시작하면서부터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러다 영화의 이야기가 반 정도 지났을 때,  주인공이 인버전 되면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온다. 그리고 여러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최종 미션 지점에 도착하게 되면, 그 장소는 바로 영화 <테넷>이 이야기를 시작한 시점이다. 즉, 이야기가 시작된 오페라 하우스 테러 사건과 동일한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라는 말의 의미

주인공을 돕는 닐이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 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야'라는 그의 말은 과거는 그냥 과거로 두고 현재 시점에서 내가 할 일을 그저 해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쩌면 영화는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을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주인공이 보고 겪는 모든 상황과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 이미 모든 일이 정해졌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이 영화가 주인공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바로 밝은 미래를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래에게 주도권을 넘기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다. 

미래에서 온 사토르는 영화 속에서 무시무시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가 초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가 가진 재산과 조직을 이용해 현재를 교란시킴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공포를 안겨준다. 지금 현실에서 우리들이 맞닥뜨린 미래의 모습은 사토르처럼 공포 자체다. 환경파괴로 인한 기상이변이나 금융위기의 신호, 전쟁에 대한 두려움 같은 여러 징후들은 현재의 우리들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고 정신을 마비시킨다.

그 부정적인 미래의 잔상은 지금도 내내 현재를 공략하고 있다.  그 공포심은 현재의 우리들을 망가뜨려 미래에 주도권을 넘겨버린다. 하지만 미래에서 온 닐처럼 긍정적인 미래도 있다. 그 미래는 무서운 미래처럼 모습을 강력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항상 우리 옆에 존재한다.  우리가 현재를 살며 그런 긍정적인 미래를 곁에 두고 더 늦기 전에 지금 해야 할 일을 해 나간다면 결국 현재의 주도권을 가진 우리가 밝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유기적으로 얽혀있다. 하지만 그것은 순방향으로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주고, 현재는 다가올 미래에 영향을 준다. 만약 그것이 반대로 미래가 현재에, 현재가 과거에 영향을 준다면 그건 정말로 영화에서 처럼 각 시간대 간의 3차 세계대전이 될 것이다. 영화 <테넷>에서는 시간대 간의 전쟁인 3차 세계대전을 막는다. 그리고 영화의 이야기 전체가 일종의 뫼비우스의 띠처럼 처음과 끝이 맞닿아 있다. 그 뫼비우스의 띠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그저 흐르는 현재의 시점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현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영화는 주인공의 경험을 통해 계속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시점은 기상 이변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그런 환경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최선의 시점이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기후 변화는 영화의 대사처럼 이미 일어난 일이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으로 두고,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미래의 암울함에 사로잡혀 있기보다는 현재의 우리가 주도자가 되어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일 것이다. 

복잡하게 꼬인 듯하지만 영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영화
 
 영화 <테넷> 장면
영화 <테넷> 장면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테넷>은 얼핏 보기에 복잡하게 꼬아놓은 듯한 이야기지만, 굳이 모든 물리 법칙을 이해하지 않고서도 영화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놀란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에 여러 다양한 해석과 발견을 할 수 있다. 그것이 감독이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영화를 본 관객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발견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인터스텔라>와 같이 작업했던 물리학자 킵 손에게 <테넷>의 자문을 받아 영화적으로 구현된 인버전 된 물체나 사람의 모습은 그 장면 자체로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 없기 때문에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할리우드 배우 덴젤 워싱턴의 아들로 영화 속 간간히 아버지와 비슷한 목소리 톤과 얼굴을 보여줘 인상적이다. 또한 닐 역을 맡은 로버트 패틴슨은 이제 꽤 진중하고 믿음이 가는 연기로 영화에 힘을 더한다. 악역을 맡은 케네스 브레너는 그가 등장하는 모든 순간에 강력한 에너지를 발생시켜 영화의 긴장을 고조시킨다. 그에 희생당하다 복수에 눈을 뜨고 자신 만의 주도권을 찾는 아내 캣도 큰 키에 일그러진 슬픈 표정으로 변해가는 인물을 잘 표현해 낸다. 감독의 훌륭한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어우러져 새롭고 지적이면서 재미있는 성공적인 놀란표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테넷 크리스토퍼놀란 시간 현재 주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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