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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 밴드가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

맨체스터 출신의 밴드 'The 1975'의 < Notes On A Conditional Form >

20.08.13 14:52최종업데이트20.08.1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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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1975의 4집 앨범 < Notes On A Conditional Form >
The 1975의 4집 앨범 < Notes On A Conditional Form >유니버설뮤직코리아
 
단언컨대, 지금은 록의 시대가 아니다. 록 음악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너무 많아졌다. 그러나 록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 역시 오만한 일이다. 20세기 만큼의 파급력은 아니지만, 새로운 아이콘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맨체스터 출신의 밴드 'The 1975'도 그 중 하나다.
 
밀레니얼 세대의 '요즘 밴드'

2019년 9월 내한공연 당시, The 1975는 'Sex'를 부르면서 화면 위에 ''Rock n' roll is dead God bless the 1975'라는 말을 띄웠다. The 1975는 자신들을 록밴드라고 정의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것이 이들의 정체성이다. The 1975는 록의 형식미에 얽매이지 않으며, 다양한 시대의 음악을 흡수하고 다시 늘어놓는 일을 즐기는 '음악 수집가'다. 밀레니얼 세대가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을 잘 보여주는 셈이다.
 
"Modernity has failed us"
(현대성이 우리를 좌절시켰어.)

- 'Love It If We Made It' 중
 

전작 < A Brief Inquiry Into Online Relationships >는 커리어의 정점이었다. 'Love It If We Made It'는 현대 사회 전체를 날카롭게 관조했고, 'I Always Wanna Die(Sometimes)'에서는 현대인의 공허한 내면을 서정적인 발라드에 담았다. 이것을 두루 해낼 수 있는 밴드는 몇 되지 않을 것이다. 현대 사회의 인간 소외를 그린 이 작품은, 라디오헤드(Radiohead)의 걸작 < Ok Computer >와 여러 차례 비교되었다. 2000년대의 밴드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찬이었다.
 
상찬을 뒤로 한 채, 4집 앨범이 발표되었다. 앨범의 문을 열자마자, 밴드는 강력한 야심을 드러낸다. 인트로 격인 'The 1975'에서 사회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음성을 그대로 사용했다. 대중음악과 사회적 의제의 접점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다. 바로 이어지는 'People'은 공개 당시 팬들에게 혼란을 선사했다. 디스토션으로 점철된 기타 사운드, 포효하는 리더 매티 힐리의 목소리, 그리고 그만큼이나 혼란스러운 가사가 한데 뒤엉켜 있었기 때문이다.
 
'Well, my generation wanna fuck Barack Obama.
(우리 세대는 오바마를 엿먹이고 싶어 해.)
 
Living in a sauna with legal marijuana'
(합법적인 마리화나, 그리고 사우나 속에서 살고 있어.)

- 'People' 중
 

물론 충격의 순간은 잠시다. The 1975는 과거의 작법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꽤 번뜩이는 곡들을 만들어내는 데에 집중한다. 특히 청량한 기타 사운드가 강조되는 'Me & You Together Song'는 기존 팬들의 기대를 훌륭하게 충족시킨다. The 1975는 밝은 멜로디 위에 '그렇지 못한 가사'를 배치하는 것을 즐긴다.

예를 들어 전작의 'It's Not Living(If It's Not With You)'에서 마약 중독의 그림자를 담았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브라스 섹션을 특이점으로 삼은 'If You're Too Shy(Let Me Know)' 역시 공허함만을 남기는 '가상 섹스'를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매티 힐리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여전히 현대인의 외로운 단면이다.
 
여러 장르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는 것도 여전하다. 피비 브리지스(Phoebe Bridges)가 참여한 'Jesus christ 2005 god bless america'는 컨트리를 수용한 곡인데, 저항 없이 귀에 다가온다. 'FKA Twigs'의 목소리를 악기처럼 활용한 일렉트로니카 'What Should I Say'는 이 앨범에서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다. 매티 힐리의 아버지 팀 힐리(Tim Healy)와 함께 부른 'Don't Worry'와 'Guys'로 마무리되는 구성은 매우 아름답다.
 
조금만 더 간결했다면
 
앞에서 표현했듯, The 1975는 자신들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야심'을 잔뜩 드러내 왔다. 뮤지션에게 있어 야심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 앨범의 문제점 역시 야심에 기인한다. 전작들이 그랬듯, 'Streaming'처럼 앰비언트의 세례를 받은 연주곡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이 트랙들이 전체적인 흐름을 해친다.

조지 다니엘스가 만든 'Having No Head'의 경우, 어쿠스틱 스타일의 전 트랙인 'Playing On My Mind'과 조응하지 않는다. 과잉의 순간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전작과의 비교는 물론, 혹은 같은 앨범 내에서 차별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곡들 역시 아쉬움을 남긴다.
 
The 1975는 포스트 모던 시대의 팝 밴드를 자처해왔다. 장르적인 경계를 해체하는 것은 물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모두 다루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갖췄다. 그러나 이 앨범에 필요한 것은 '간결함'이었다. 백화점식 구성을 택하면서도 강한 내력으로 청취자를 잡아끌었던 3집을 다시 찾게 된다. < Notes on a conditional form >에 좋은 팝송이 실려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창조력과 과욕, 그 사이 어느 지점에 서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THE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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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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