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막을 내린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KBS
OTT 서비스의 등장과 모바일-유튜브 시대를 맞이하여 유행에 민감한 젊은 시청자들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TV 시청 방식이나 본방 의존률이 과거보다 훨씬 낮아졌다. 또한 일상적 리얼리티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공감대를 선호하는 시대를 맞이하여, 미리 연출된 설정과 연기로 웃음을 이끌어내야 하는 콩트 코미디의 매력도 반감됐다.
현재 한국 코미디가 일종의 위기에 직면한 것은 맞지만, 한편으로는 동시에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개콘>의 중단은 전통적인 공개 코미디라는 '포맷의 쇠락'을 의미하는 것일뿐, '코미디 장르 자체의 인기나 수요'가 떨어졌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온라인 세계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는 최근 코미디 장르에 대한 관심이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여러 가지 구조적 제약이나 비용 문제가 큰 방송에 비하여, 온라인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과 자유로운 포맷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실제로 이미 많은 유명 희극인들이 방송무대를 벗어나 유튜브나 팟캐스트로 진출하는 등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또한 최근의 대중문화에서는 장르 구분이 갈수록 무의해지고 있는 추세다. 이미 예능에서 가수나 배우 출신들이 전문 희극인보다 더 활약하는게 대세가 된 것처럼, 희극인들 사이에서도 코미디 그 자체를 벗어나 드라마, 가요 등 다른 장르와 융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유재석이나 김신영은 트로트 가수로 변신하여 기존의 이미지와 다른 '제2의 캐릭터'(부캐)를 만들어내기도 했으며, 박나래는 국내 여성 희극인으로는 드물게 연애와 성담론을 전면에 내세운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도하기도 했다.
방송가의 새로운 포맷 실험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콩트나 인기작 패러디를 통하여 유튜브-모바일 형식에 걸맞은 '숏폼' 형식의 드라마형 코미디 제작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JTBC가 론칭을 준비중인 새 예능 <장르만 코미디>는 다양한 드라마, 쇼, 웹툰, 뮤지컬, 가요 등의 장르를 코미디와 결합한 이른바 '코미디 버라이어티'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형식은 알고보면 1990년대까지 큰 인기를 끌었던 <유머1번지>나 <해피선데이>, <테마극장>같은 프로그램의 21세기 리메이크 버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당시에도 코미디 프로그램에 가요 퍼포먼스나 토크쇼를 가미한다거나, 쇼 버라이어티 안에 코미디 코너가 등장하는 등의 시도는 종종 이루어졌다. 어찌보면 유행이라는 게 지나갔다고 아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다시 돌고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어쩌면 지상파 채널과 공개 코미디라는 안정적이지만 이미 쇠퇴한 플랫폼이 붕괴되었기에 가능했던 변화라고도 볼 수 있다. '창조적 파괴'라는 표현처럼, 코미디 생태계가 변화하면서 기존 포맷에 대한 의존도에서 강제로 탈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희극인들 역시 스스로의 생존을 위하여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면서 코미디 장르 자체가 오히려 한 단계 더 역동적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시청자들은 장르적 다양성이 위축되고 있는 현상에 더 갈증을 느낀다. 특히 TV를 틀면 나오는 비슷비슷한 관찰 예능이나 똑같은 출연자들만 채널을 넘나들며 반복해서 등장하는 구조에 식상함을 느낀 지 오래됐다. 여전히 정통 코미디를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의 수요가 높다는 것을 감안할 때, 언제든 적절한 계기만 마련되면 코미디의 인기는 다시 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라 본다.
문제는 21년 전 <개그콘서트>가 처음 등장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때처럼,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만큼 코미디 장르를 선도할 '대안적 포맷'을 누가 먼저 제시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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