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한화 경기. 3회말 롯데 이승헌이 1사후 주자 1,2루에서 정진호의 타격에 머리를 맞아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롯데와 이승헌 모두에게 안타까운 하루였다. 1년 만에 개인 통산 두 번째로 선발 등판 기회를 받은 이승헌은 교체되기 전까지 2.1이닝 1피안타 1볼넷 1탈삼진 3실점(수비 실책으로 투수 비자책점)으로 호투했으나 불의의 부상으로 첫 승의 기회를 날렸고 당분간 결장이 불가피해졌다. 마운드 위에서의 심리적인 트라우마도 걱정되는 대목이다.
롯데는 이승헌이 마운드에서 내려간 뒤 뒷심을 발휘하며 동점으로 승부를 연장까지 몰고 가는데 성공했으나 구원투수 김대우가 11회 말 2사 3루 정진호의 타석 때 어이없는 끝내기 보크를 범하며 허무한 패배로 마무리해야 했다.
하지만 야구팬들은 이날 경기결과보다는 이승헌의 부상과 대전 구장에서의 응급대처 과정에 더 관심을 보였다. TV 중계를 통하여 이승헌의 부상과 후송 과정까지 모두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었던 야구팬들은, 자칫 생명까지도 위험할 수 있는 다급한 상황이었는데도 정작 현장에서의 응급 대처가 너무 안이했던 게 아니냐는 불만을 쏟아냈다.
한화 이글스 측은 일단 초동대처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한화 측이 설명한 내용에 따르면 '심판이 올라가서 구급차 콜업하는 데 17초', '응급차에 앞서 내야에 있던 응급 구조자가 그라운드에 진입해 상태를 확인하는 데 20초', '심판 콜 사인 이후 구급차가 입차하는 데 30초' '그라운드에서 응급처치를 하는 데 총 2분 15초, 앰뷸런스가 그라운드에 진입해서 빠져나올 때까지는 총 2분 50초가 걸렸다'는 주장이다.
의료진의 대응이 너무 느긋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선수가 의식이 있거나 움직일 수 있는지, 경추 손상 여부 등을 확인하는 게 순서이고, 후송 과정은 모두 절차대로 진행된 것'이라는 해명이다.
그런데 동영상으로 확인한 결과 이승헌이 타구에 맞고 심판이 바로 경기를 중단시킨 시점에서부터, 선수를 구급차에 옮겨 막 그라운드를 출발하기까지만 약 3분 20초가 걸렸다. 촌각을 다투는 응급 상황에서는 단 30초도 큰 차이가 될 수 있다.
더구나 팬들이 지적한 것은 단순히 시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중계 화면을 보면 이승헌의 부상으로 경기가 중단되고 심판이 다급하게 구급차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호출하는 장면이 나왔고, '빨리 서두르라'는 육성도 들린다. 하지만 구급차는 바로 들어오지 않았고 2~3번 재촉해서야 겨우 그라운드에 투입됐다. 심지어 들어온 뒤에도 응급인력의 일사불란함은 보이지 않았고 우왕좌왕했다.
의료진이야 절차상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게 절차상 먼저였다고 해도 구급차 문을 열고 들것을 꺼낸다든지, 환자를 후송할 후속 준비를 한다든지, 각자 주어진 역할에 맞춰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였다. 그러나 이날 대전구장에 투입된 인력들은 응급 상황에 투입되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시종일관 느릿느릿하고 굼뜬 태도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정작 사전 준비 자체도 미흡하여 마스크도 쓰지 않고 들어온 인력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머리를 다친 선수를 들것도 아닌 여러 사람이 손으로 들어서 옮기는 어이없는 장면도 등장했다. 일부 야구팬들은 "응급대처가 아니라 산책 나온 줄 알았다" "자신들 가족이나 지인이 다쳐도 저렇게 한가롭게 걸어 다닐 건가"라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야구팬들은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위험한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특히 롯데 팬들에게는 임수혁이 2000년 4월 1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경기 도중 부정맥에 의한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나 초동 대처 실패로 결국 사망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임수혁의 사고는 모든 스포츠 경기장 내에서 응급 시스템이 큰 폭으로 개선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심장제세동기, 산소호흡기 등이 구비된 구급차나 자격증을 갖춘 전문 의료진이 배치된 것이 모두 임수혁 사건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춰도 결국 그 시스템을 제대로 움직이는 것은 사람들의 '태도와 정성'이다. 응급대처는 오히려 과할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하는 게 좋다.
투수 보호장비의 필요성 제기
한편으로 이번 이승헌 사건으로 인하여 야구장에서 '투수 보호 장비'의 필요성도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타자나 포수에 비하여 별다른 보호장비가 없는 투수는 이번 사건처럼 갑작스러운 타구에 의한 부상 위험에 매우 취약한 편이다.
KBO리그에서도 타구에 의한 사고가 숱하게 발생했다. 1995년 태평양 투수 최상덕이나 1999년 쌍방울 김원형 등의 투수들은 경기도중 타자의 직선타에 얼굴을 맞아 큰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SK 김광현은 2009년 타구에 손가락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하며 그대로 시즌아웃 됐고, SK 윤희상은 2014년 타구에 하복부 급소를 정통으로 맞아 병원에 이송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2016년 투수에게도 헬멧을 쓰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착용감이 불편하고 투구 집중력을 방해한다는 이유 등으로 결국 상용화되지는 못했다. 국내에서도 선수에 따라 급소 등에만 간단한 보호장비를 갖추고 경기에 나서지만 여전히 많은 투수들이 별다른 대책 없이 타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승헌의 사례를 단순히 특정 선수의 불운이라고만 치부하지 말고 선수보호를 위한 구조적인 대책 마련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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