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요일의 병>중 한 장면. 35년만에 만난 엄마와 딸. 모든게 불편하고 어색하다. 딸과 엄마는 화해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
딱 한 번. 딸은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폭풍처럼 쏟아냅니다. 여덟 살부터 줄곧 창가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던 그 심정을 아느냐고 소리치다가, '여덟 살짜리 딸을 두고 집을 나간 여자는 절대 알지 못할' 거라면서 컵을 엄마에게 내던집니다.
그 일을 계기로 딸과 엄마는 마음속을 한 꺼풀 벗고 다가선 듯했으나 딸이 중병을 앓고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엄마는 딸이 자신을 외딴 산장에 데려온 이유를 알게 됩니다. '내가 뭘 해주면 좋겠냐'고 묻는 엄마에게 딸은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감독은 자신의 자식에게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는 이스라엘 한 엄마의 이야기를 읽고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 속 엄마 아나벨은 딸에게 아무런 모성도 애정도 없는 엄마처럼 보입니다. 아나벨은 왜 여덟 살짜리 딸을 두고 집에서 나와야했을까요? 전 남편과의 대화에서 그 상황을 잠깐 엿볼 수 있는데요.
아나벨 : 내가 떠난 건 더 원했기 때문이야
남편 : 그래서 더 얻었어?
아나벨: 그래. 하지만 언제나 충분하지는 않지. 절대. 그래서 더 힘들고.
아나벨이 뭘 원했는지,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나벨은 엄마라는 위치보다 자신의 욕망과 삶을 더 중요시여긴 사람이라는 것. 대부분의 엄마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욕망과 꿈을 꾹꾹 누르며 살지만, 아나벨은 그렇지 않았죠. 딸 키아라는 여덟 살 이후, 엄마를 그리워하면서도 증오하면서 성장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곧 엄마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누가 뭐래도 꺾을 수 없는 고집. 자신의 원하는 대로 살겠다는 딸과 자신의 길을 찾아 집을 떠난 엄마. 엄마와 딸은 그처럼 서로 묘하게 평행선을 달리며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영화 첫 장면에 등장하는, 데칼코마니처럼 나란히 서있는 두 그루 나무는 서로 닮아있는 모녀를 상징하는 은유가 아닐까요.
모성은 반드시 윤리적이어야 하는가?
엄마는 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엄마가 자신에게 생명을 주었듯, 엄마의 손으로 그 생명을 거두어주길 바라는 것이죠. 결말은 헉, 소리가 날 정도로 충격적입니다.
저게 과연 모성인가? 저 모성은 윤리적인가.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여덟 살짜리 딸을 버리고 제 길을 찾아 떠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 자격이 없다, 라고 단정 짓는 사람에게 이 결말은 감당할 수 없는 최악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상대를 사랑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양하듯, 이 영화의 결말을 바라보는 시선도 제각각이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모성' 역시 한 가지 색깔과 성격은 아닐지 모릅니다. 애초부터 정답이라는 게 없는지도 모릅니다. 때론 자식보다 자신이 더 소중한 '모성'도 있으니까요. 그렇다해서 그건 모성이 아니라고 100% 단정 지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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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