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다큐멘터리 ‘글로리아 올레드 : 약자 편에 선다'의 스틸 이미지.
넷플릭스
싸움은 이제 시작입니다
2018년에 공개된 <글로리아 올레드>가 중심에 내세운 사건은 단연 전 세계를 충격에 휩싸이게 한 '연쇄 폭행범' 빌 코스비 사건이다. 2017년 6월 최초 폭로 이후 무려 60명이 넘는 피해자들의 '미투'가 쏟아졌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글로리아 올레드를 찾았고, 그의 손을 잡고 기자회견에 나섰다. 적지 않은 피해자들이 미디어에 노출된 그의 '투사'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가 아니면 도저히 안 될 거란 생각에 변호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고 고백했다. 글로리아의 세상과의 싸움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순간이라 할 만하다.
<글로리아 올레드>는 결백을 주장했던 빌 코스비에 대항하는 글로리아 올레드와 피해자들의 눈물겨운 투쟁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 동시에, 결국 의미 있는 판결을 이끌어내는 피해자들의 법정에서의 호소 또한 놓치지 않고 담아 낸다. 지난 2018년 9월, 미 펜실베니아주 법원은 빌 코스비에게 최대 10년 형을 선고했다. 미국 내 '미투 운동'이 일궈낸 첫 실형 선고였다.
이렇게 20대에 법대와 로스쿨을 졸업한 뒤, 평생 법조계와 여성인권 운동에 몸담은 글로리아 올레드가 '당사자성'에 눈뜨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첫 아이의 아빠와 이혼한 글로리아 올레드에게 닥친 사건은 실로 충격이었다. <뉴스위크> 한국판 기사에 따르면, 그는 젊은 시절 멕시코로 여행을 갔다가 데이트상대였던 의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임신했다고 한다. 당시 미국에서는 낙태가 허용되지 않아 불법 시술을 받아야 했던 그는 과다출혈로 입원까지 해야 했다. 자신의 아픈 과거를 다큐멘터리 카메라 앞에서 그는 담담히 털어놓았다.
더 놀라운 것은, 올리비아 글레드의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끝날 수도 없으리란 사실이다. 그의 주요 의뢰인 중 하나는 바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취임 3일 전 성추행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여성이었다. 트럼프와 싸우겠다고 선언한 여성들이 올리비아 글레드를 찾았고, 올리비아 글레드 역시 기꺼이 그들의 옆에 섰다. 그리고, 트럼프 당선 직후 미 워싱턴 광장에서 열린 '반 트럼프' 집회에 참석한 올리비아 글레드는 "여성은 안전하고 저렴하며 합법적인 낙태를 선택할 헌법상의 권리를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침묵하지 않을 겁니다. 실패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싸웁시다"라고 외쳤다.
"러브 트럼프스 헤이트"와 "글로리아"를 연호하는 여성들과 청중들에게 둘러싸인 글로리아 올레드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외친다. '미투' 운동이, 여성 운동의 연대가 변화시킬 세상은 이제 시작이라는 듯, 그 전망 또한 '밝은 미래'가 될 것이라는 듯.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카메라는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빌딩숲을 내려다보는 글로리아 올레드의 뒷모습을 비추며 이런 음성을 전한다.
"싸움은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