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후 '무빙스토리'의 무대. 덩그러니 쓰러져있는 텅빈 집에서 정처없이 떠도는 세계난민의 현실이 느껴진다.
박순영
19일 오후 2시 의정부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본 <무빙 스토리>는 한국과 덴마크 예술가로 구성된 프로젝트그룹 'KoDe8071'의 작품으로 난민문제를 다뤘다. 8071은 한국과 덴마크 간 거리 8071km를 뜻한다고 한다. 이날 기자는 아이들을 외할머니집으로 보낸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극장공연을 보았다.
부리나케 화장실 다녀와서 오후 1시 58분에 갑자기 무대로 이끌려 무용수들의 안내대로 줄을 서며 무대를 움직였을 때만 해도 <무빙 스토리>가 그토록 운치 있는 공연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관객은 지정된 자리에 앉고 이동하거나 하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가야금과 첼로의 피치카토가 분위기를 더하더니, 어느덧 다섯 무용수가 굽은 등에 작은집 하나씩을 이고 나오니 왠지 모를 슬픔이 올라왔다.
이내 소프라노의 흐느낌이 파도가 되어(영상 윤제호) 삼면 스크린의 영상에 실감 나게 파도치는 쪽빛 물결과 소프라노의 쪽빛 치마가 슬픔을 가득 메운다. 소프라노가 대걸레로 집 모형을 한쪽으로 치운다. 그 모습 뒤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첼로와 가야금, 한국전통 노랫가락을 함께하는 소프라노, 그리고 정가의 어우러짐에는 음악의 빠르고 흥겨운 속도를 돕는 아티스트 윤제호의 파티클 영상의 입체감이 크게 한몫했다.
이 작품은 2019년 한-덴마크 수교 6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하고 의정부음악극축제가 공동 제작한 작품인데, 왜 난민 주제이고, 왜 한국과 덴마크인지의 느낌을 점차로 알 것 같았다. 마지막 흰 종이 인형이 줄에 매달려 주렁주렁 들어올 때는 한국과 덴마크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서로를 품어야만 함께 살 수 있다는 깊은 외침을 느꼈다.
크로마하프의 울림이 이렇게 황홀했나? 오후 3시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본 폐막작 < Home >에서는 리버브와 이펙터가 촉촉히 들어간 크로마하프의 음향이 새로 집을 짓기 위해 울려 퍼진다. 처음에 이 집의 가장이 나무에 비닐을 뚝딱 호치키스로 박아 파티션을 완성한 것처럼, 공사 인부들이 이층집을 금새 세우고, 식구들이 냉장고, 식탁, 변기, 조명을 채우니 어느새 집이 뚝딱 완성된다.
아이와 부부, 아시아계 할머니, 흑인여성, 중동계 청년까지 일곱명이 각자의 공간에서 바쁘게 생활한다. 이들이 벽장과 침대, 책장에서 마술처럼 갑자기 등장해 재미를 준다. 샤워장에 들어선 임신한 아내의 아름다운 나체가 잠깐 비치는가 싶더니, 이내 좁은 욕실에서 약간 나체의 (잠시 알몸이 보이다가 금세 샤워타올로 가린) 식구들이 샤워욕조와 변기, 세면대를 번갈아가며 옥신각신하다가 변기가 막혔다.
그런데 웬걸, 이집 꼬마가 관객 중 한명을 집에 초대한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관객들이 무대집에 한명 두명 초대되어 파티에 참여하고, 관객들은 배우들의 제스처에 자연스레 동화되어 집주인역할도 하며 극에 적극 참여한다. 전구조명이 관객들의 도움으로 객석과 무대를 화려하게 연결하고, 객석 선물상자에서 나온 졸업식 가운을 입고 졸업도 하고, 2층에서는 결혼식도 한다. 그러니까 내 옆의 관객분이 말한다. "그럼, 장례식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