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백인 여러분넷플릭스 캡처
넷플릭스
미국사회를 휩쓰는 대안우파(alt-right)의 바람에 대해서도 드라마는 이야기한다. 대안우파란 백인우월주의를 위시한 21세기의 극우 운동을 일컫는 표현이다. 윈체스터의 흑인 기숙사인 암스트롱-파커 하우스(Armstrong-Parker House)를 두고 일부 백인 학생들이 흑인만을 위한 기숙사가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통합을 요구하고 샘 화이트를 SNS를 통해 인신공격하던 상황이었다.
어떤 이는 '아이비리그를 다닐 수 있는데 인종차별이 어디 있냐'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논리도 펼친다. 직접 암스트롱-파커를 습격할 거라는 협박 메시지도 보낸다. 트럼프 당선 이후 많은 인종차별적인 혐오범죄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차별이 일상인 미국, 과연 우리는 안전한가
이렇듯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은 아직도 미국 사회에서 해결되지 않은 인종차별 문제를 우회하지 않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 작품이 '그들'에게는 신경이 쓰였나보다. 엔터테인먼트 신문 겸 웹사이트인 '디 A.V 클럽(The A.V Club, 이하 AVC)'에 따르면, 실제로 대안우파 세력들이 드라마에 백인 주연이 있어야 한다면서 새 시리즈를 보이콧하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2018년 5월 AVC와의 인터뷰에서 저스트 시미언 감독은 제목 때문에 자극받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한다.
"(AVC : 방송이 처음 나왔을 때 넷플릭스를 보이콧하겠다고 위협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여전히 제목에 의해 자극받는 이들이 존재한다. (중략) 대화가 끝나는 (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흑인이 '백인에게(Dear white people)' 와 같은 말을 했을 때 왜 그렇게 자극을 받았는지 우리는 더 이야기해야 한다. (백인 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그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가정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에 대한 이런 반응들은 방송 내용 그 자체다." (저스트 시미언 감독)
최근에는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일군의 미국 고등학생들이 워싱턴 D.C에서 낙태 반대 시위를 하고 있었고, 일부는 트럼프가 대선 시즌부터 지속적으로 들고 나왔던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가 적힌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원주민 인권활동가와 대립하게 되었으며, 한 고등학생이 원주민 참전용사인 네이선 필립스(Nathan Phillips)를 깔보듯이 쳐다보는 장면이 논란이 되었던 것.
과연 '위대한 미국'에 이민자, 흑인, 타종교가 포함되는가? 혹시 그것은 백인만을 위한 사회는 아닐까?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에서 2017년 이전까지 패스티시는 흑인 코스프레를 하는 이벤트의 이름을 '친애하는 흑인 여러분(Dear Black People)'로 지었는데, 이때 주류 사회가 소수자 공동체의 특정한 정체성을 희화화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 된다. 그것을 소수자가 맞받아칠 때 주류 사회가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익숙한 풍경 아닌가.
(흑인 학생이 랩 가사의 '검둥이(nigga)'라는 표현을 따라하는 것을 지적하자 백인 학생이) "나는 인종차별주의자 아니야."
"그렇다고 한 적 없어."
"날 검열하려고 하다니 기분이 이상한 걸."
"내가 랩을 하면서 '흰둥이', '허연 놈'이라고 하면 어떨까?"
"난 신경 안 써."
"바로 그거야. 그게 다른 거야. 넌 신경 안 쓰고 난 쓴다는 거. 알겠어?"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의 시즌 1 첫 회 첫 장면에서 "교육의 역설은 사람이 교육으로 눈을 뜨면서 자신을 교육해준 사회를 검토하게 된다는 점이다"는 소설가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의 말을 인용한다. 과연 우리는 차별과 혐오에서 자유로운가? 그리고 우리를 교육해준 사회의 민낯을 비판할 기회를 얻고 있는가?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은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유의미한 문제의식을 던져주고 있다.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일상에서의 정치적인 움직임이 필요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