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왕 엘리자베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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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이한 일이 벌어지는 원인을 '찰스 세자'가 아니라 '찰스 다윈'의 관점으로 풀이하면, 적자생존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부르주아 계급에게 권력이 넘어가고 프롤레타리아들이 권력에 도전함에 따라 왕실이 소외되던 1800년대 전반에 영국 왕실이 살아남은 비결은 새로운 환경에 스스로를 맞추려는 치열한 노력에 있었다.
이 시기의 영국 왕실은 국민들에게 잘 보이는 방법으로 위기를 타개하고자 했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힘으로 억누를 수 없었기에, 백성들한테 '아부'하는 방법으로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용민 건국대 중국연구원 특임교수의 논문 '영국의 복지군주제-입헌군주제의 현대적 변화와 적응'은 그 같은 영국 왕실의 노력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신흥 부르주아들의 의회 진출을 용이하게 하는 1832년 선거법 개정에 대한 영국 왕실의 대처법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1832년 영국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군주로서의 정치적 역할이 축소되고 입헌군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드러내야 했던 빅토리아 여왕과, 자선사업에서 단결과 소속감과 목적의 순수함을 선전해야 했던 중산계급의 선호가 일치하여, 현대적 의미의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군주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14년에 영국사학회가 발행한 <영국 연구> 제31권에 수록.
군주의 역할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영국 왕실이 자선사업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스스로 복지군주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다. 이런 왕실의 전략이, 자선사업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의 팽창을 추구하던 부르주아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그 같은 이해관계의 일치 속에서 일부 자본가들은 왕실과 함께 자선사업을 벌이는 방법으로, 자신들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누그러뜨렸다. 왕실은 자본가들의 자선사업 참여를 유도하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작위를 하사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가진 자들을 돕고 한편으로는 가진 자와 없는 자 양측을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영국 왕실은 '지배하는 왕실'이 아니라 '세상에 봉사하는 왕실'이란 이미지를 구축해 나갈 수 있었다.
비슷한 장면이 드라마 <황후의 품격> 제1회에서도 묘사됐다. 황제 이혁(신성록 분)은 사회적 약자들을 궁에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이 연회에 초대됐다가 황제와 결혼까지 하게 된 인물이 드라마 주인공인 오써니(장나라 분)다.
이미지를 바꿔 대중에 접근하는 영국 왕실의 전략은 주효했다. 1850년대에는 '도와달라'는 노동자들의 편지가 왕궁으로 쇄도할 정도였다. 왕실 입장에서는 재정적 곤란이 수반되는 일이었지만, '즐거운 비명'을 지를 만했다. 백성들이 "물러나라!"고 요구하지 않고 "도와달라!"고 요구하게 됐으니, 그 점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었다. 왕실 금고에 돈이 부족하면, 돈 있는 사람들한테 작위를 수여해서라도 복지 비용을 충당하면 그만이었다.
왕실은 처음에는 수동적 입장에서 복지 문제를 처리했다. 도와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때만 지원을 제공했다. 그러다가 1800년대 후반에는 전담 관리를 두고 복지 수요를 찾아나서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능동적 입장에서 복지 사무를 처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에는 군주의 이미지가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에 봉사하는 자'로 바뀌어 있었고, 공주와 왕자들도 세상의 특혜를 받는 신분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신분으로 비치고 있었다. 위 논문은 아래와 같이 말한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문장 속의 단어 몇 개를 생략했다.
"이 시기에 다다르면, 왕족이란 자리가 즐거움과 권력을 가져다주는 자리가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소환된 자리라는 확실한 사고의 전환이 확립됐다."
지금은 고인이 된 다이애나는 세자빈 시절에 자선 활동에서 두각을 보였다. 그의 활동은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그런 선행은 그 자신의 심성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영국 왕실의 전통과 지원에 입각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