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기스 플랜>의 한 장면.
오드
매기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재혼한 여성', '엄마', '상식적인 어른'의 역할을 따르지 않는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가능성을 놓치고 있다면 그것을 지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대신 매기는 자신의 말처럼 현실을 직시하고 여기에 맞추어 계획을 세우고 행동한다. 물론 토니의 말처럼 인생은 단순하지 않다. 상자에서 죄다 꺼냈다가 도로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랑은 사방에 풀어져 얽힌 실타래처럼 너저분하고 소모적인 것이어서 깔끔하고 반듯한 결말을 기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좋은 의도로 접근해도 일을 망칠 수 있다. 실제로 조젯이 매기의 계획에 동참한 이후에 일이 순조롭게만 풀리는 것은 아니다. 갈등과 충돌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가령 조젯과 자신의 재결합이 매기의 의도였음을 알게 된 존은 그녀 때문에 불필요한 부정을 저지르고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잠적을 하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좌충우돌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진심을 확인한다. 조젯은 사실은 자신이 지난 결혼 생활에서 실수를 저질렀으며 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 존에게 고백한다. 존 역시도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조젯이며 그녀가 필요한 사람임을 확인하게 된다. 매기의 말처럼 그녀의 행동은 결국 난장판을 초래했지만, 사람들이 현실을 마주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되었다면 그 난장판은 애초에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실제로 매기 같은 사람을 주변에 둔다면 상당히 피곤할 것이다. 매기의 '관심'은 '참견'처럼 느껴질 것이고, 사람들을 배려하는 '계획'은 '오지랖'처럼 느껴질 것이다. 아무리 선한 의도라지만 가만두어도 될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여러 사람을 괴롭게 한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매기와 같이 선량한 존재들에게 너무 각박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이 유발하는 피로함이 더 행복한 삶을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라면. 그러니 우리가 '상식'으로 위장된, 때로는 불필요한 관습을 넘어서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더욱 이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면. 매기와 같은 사람들을 더 이상 민폐가 아닌 존재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사족과 같은 이야기. 사실 <매기스 플랜>은 개인의 관계뿐만 아니라 보다 사회적인 영역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이야기다. 모든 사회 운동에는 당사자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고 연대를 자처하는 앨라이(Ally)들도 함께한다. 이들의 열정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기 일도 아닐 텐데 왜 저렇게 나서냐고 볼멘 소리를 하기도 한다. 자기 인생이나 잘 챙기지 남의 문제에 참견한다고 비아냥을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 운동의 목표는 달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것은 사회의 상식에 어긋난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매기의 유례 없는 계획에 조젯이 참여하고 존이 함께하여 결국은 이상적에 결말에 이른 것처럼, 가능성이 희박해보이는 일이라도 선한 사람들이 한 명씩 함께 하다보면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매기스 플랜>의 주인공이 그렇게 되었듯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그리고 주인공인 매기는 내게 무척 소중하다. <매기스 플랜>은 각박한 현실을 살다보면 우리가 잊을 수 있는 낙관과 선량함 그리고 용기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나는 이 따스한 온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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