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픽사베이
나는 얼마전 친구와 인천 주안역에서 만났다. 폭염 때문에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갈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인천 특급전동열차를 타고 주안역에 내렸는데, 내리자마자 더운 열기가 몸 안으로 훅 들어왔다. 역을 나와 쨍쨍한 햇볕을 받으며 남쪽으로 걸어가니 머리카락이 얼굴과 함께 이글이글 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날씨보다도 더 뜨겁고 불꽃같은 열정을 보여주는 영화를 보기 위해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우리가 보기로 한 영화는 재일교포의 차별문제를 다룬 <카운터스>다. <카운터스>는 일본 내 혐오단체의 시위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를 다룬 영화다. 약자와 평등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한 영화지만 상영관은 몇 곳 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영화다 보니 상업적으로 흥행하기는 쉽지 않다. 300만 인구를 자랑하는 인천에서도 <카운터스>를 상영하는 데는 단 세 군데뿐이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우리가 갔던 다양성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이다.
'영화공간주안'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역 인근에 위치한 영화관이다. 주안역에서 남쪽으로 인천 사랑병원이 있는 곳을 따라서 걸으면 영화공간주안이 있는 건물이 나온다. 영화공간주안은 건물 7층에 위치해 있는데, 처음부터 예술영화관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이 자리에는 '맥나인'이라는 민간 영화관이 있었다. 이후 맥나인이 폐업한 자리에 남구청이 영화공간주안을 설립했다. 영화공간 주안은 설립(2007년) 당시 국내 지방자치단체 최초의 예술영화관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학산문화원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그로부터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설립 당시의 구청장도, 국회의원도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고 심지어 구 이름도 남구에서 미추홀구로 변경되었지만 영화공간주안은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관람 가격은 다른 영화관의 가격 상승에 비하면 크게 변하지 않았다. 평일에는 거의 일반 영화관의 반값인 6천 원에 영화를 볼 수 있고, '문화가 있는 날'에 방문하거나 각종 할인 서비스를 이용하면 더 저렴한 가격에 관람할 수도 있다.
다양성 있는 영화들 상영하는, '영화공간주안'영화공간주안이 자리한 주안역 인근에는 CGV가 두 곳이나 있다. 가까운 곳에 대형 영화관이 둘이나 있으니 위협적이다. 하지만 영화공간주안은 다른 영화관과는 달리 다양성이 있는 영화를 상영한다. 예술영화나,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인디 영화들이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가 스크린에 전혀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되도록이면 다양성이 있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이 영화관에선 다른 영화관에서는 보기 어려운 영화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제작된 지 꽤 시간이 지난 영화도 틀어준다. 덕분에 개봉된 지 10년이 지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초속 5cm>(2007)를 볼 수 있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이후 작품들과는 그림체가 다르지만, 감성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대만 가족의 삶을 그린 영화 <하나 그리고 둘>(2000) 역시 이곳에서 보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비상업적인 성격이 강한 영화도 자주 상영한다. 특히 영화의 성격 때문에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단체의 탄핵 반대 집회를 그린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는 일반 영화관에서는 접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이기에 흥행을 기대하기 어렵고, 영화가 담담하게 관조적인 시선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일본 내 재일동포에 대한 혐오 집회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그린 <카운터스> 역시 상업적으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은 영화다. 외국에서 혐오 집회와 싸우는 사람을 그리고 있어 쉽게 정보를 얻기 어렵다. 모두 영화공간주안이 있기에 볼 수 있는 영화들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 번째 살인>, <어느 가족> 역시 영화공간주안에서 상영되었다.
영화공간주안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지역과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