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재성 '내 공이야'(카잔=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한국 이재성이 독일 요나스 헥토어와 공을 다투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축구 시장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유럽은 한국 선수들에게는 꿈의 무대로 여겨진다. 2002 한일월드컵 이후 한동안 K리거들의 유럽진출이 활성화됐다. 이영표, 이을용, 이동국, 이천수,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등 많은 K리거 출신들이 과감하게 유럽에 도전했다. 성공한 사례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례도 있지만 많은 팬들은 그들의 도전정신 자체에 박수를 보냈다.
2010년대 들어서 한국 선수들의 유럽무대 도전은 다소 뜸해진 분위기다. 손흥민이나 이승우, 이강인처럼 아예 유소년 시절부터 해외 무대에서 데뷔하는 경우는 늘어났지만 K리거들의 유럽무대에 진출하는 경우는 오히려 과거보다 줄었다. 심지어 유럽 1부리그로 직행하여 주전을 차지하는 사례는 거의 보기 힘들어졌다.
최근 독일 2부리그 홀슈타인 킬과 계약을 맺으며 유럽진출에 성공한 이재성의 사례는 한국축구에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K리그 최강팀 전북의 주전 미드필더이자 국가대표로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에도 출전했던 이재성은 이적료 150만 유로(한화 약 20억 원)의 조건으로 홀슈타인에 입단했다. K리그 최우수선수(MVP) 출신인 이재성이 아무리 독일이라고 하지만 2부리그 팀으로 간다는 소식에 아쉬워하는 팬들이 적지 않았다.
이재성의 홀슈타인행은 현재 '한국축구의 위상'과 '선수의 도전정신'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봐야한다. 냉정히 말해 유럽무대에서 한국축구나 K리그에 대한 인지도와 평가는 그리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국축구가 세계무대에서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월드컵이 유일하지만 한국은 지난 러시아월드컵에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손흥민-조현우-김영권 등 일부 선수들을 제외하면 한국 선수들의 실력은 대체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월드컵에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여 주가가 떨어진 K리거에는 이재성도 포함된다.
최악의 한 수 될 수도 있는 이재성의 선택, 그러나...이재성은 당초 잉글랜드 풀럼으로부터도 관심을 받았지만 월드컵에서의 부진과 워크퍼밋(취업비자) 문제 등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K리거들이 잉글랜드나 스페인같은 유럽 1부리그로 직행하는 사례는 앞으로 점점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K리거들 입장에서는 굳이 유럽무대에 도전하겠다면 비교적 제약이 덜한 유럽 중소리그나 2부 리그를 거쳐서 우회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재성은 바로 그런 도전을 선택했다. 1992년생으로 25세인 이재성은 축구선수로서는 더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다. 이미 유럽무대에서 어엿한 스타플레이어로 자리 잡은 손흥민과는 동갑이다. 한창 전성기를 맞이해야할 나이에 K리그와 아시아 정상급 팀에서 뛰던 선수가 유럽이라고 해도 2부 리그팀으로 간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임에 틀림없다. 만일 홀슈타인이 다음 시즌 1부리그 승격에 실패하거나 이재성이 독일무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당장 이번 선택은 최악의 한 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는다면 실패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성공을 찾아갈 기회도 없다. 어차피 유럽 1부리그에서 뛴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한때 유럽무대에서 활약했던 이청용, 박주영, 윤석영, 박주호 등도 소속팀에서 짧게는 반년, 길게는 2~3년 이상 주전경쟁에서 밀려 출전기회도 잡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커리어를 망친 바 있다. 결국 선수에게 팀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팀의 명성이나 현재의 몸값이 아니라 '구단이 얼마나 그 선수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가지고 있느냐'다.
서정원 수원 삼성 감독이나, 디종 권창훈이 좋은 예다. 서정원 감독은 현역 시절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SV리트 등에서 활약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리그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시절이라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서정원 감독은 자신에게 출전기회가 보장된 팀에서 충분한 적응기를 거쳐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권창훈도 2017년 수원에서 프랑스 1부리그 승격팀인 디종으로 이적했다. 현재까지는 K리거가 유럽 1부리그로 직행한 마지막 사례다. 입단과 동시에 바로 주전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니지만 권창훈의 성장세에 확신을 가진 디종은 꾸준하게 기회를 제공했다. 결국 권창훈은 지난 시즌 마침내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기량이 화려하게 만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즌 막판 안타까운 부상만 아니었다면 러시아월드컵 출전과 함께 권창훈의 주가나 이적설은 지금보다 더 치솟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재성이 2부 리그팀인 홀슈타인 선택한 이유이재성이 굳이 2부리그팀인 홀슈타인을 선택한 이유도 다른 유럽구단들보다 가장 적극적인 러브콜과 기회 보장에 마음이 쏠린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무대가 처음인 이재성 입장에서는 적응기가 필요하고 1부리그보다는 다소 부담이 덜한 하부리그에서 충분한 출전기회를 확보해 경험을 쌓겠다는 것인데, 나쁜 전략은 아니다. 설사 홀슈타인이 다음 시즌 1부 승격에 실패한다고 해도 이재성이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독일이나 유럽 타 구단의 주목을 받을 수도 있다.
K리거 출신인 김두현은 성남에서 뛰다가 2009년 잉글랜드 웨스트브로미치로 임대 이적한 후 소속팀이 바로 1부 승격에 성공하며 정식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K리거는 아니었지만 김보경이나 박주호의 사례도 비슷하다. 김보경은 J리그 세레소 오사카에서 뛰다가 런던올림픽 이후 2012년 잉글랜드 챔피언십 카디프시티로 이적하여 이듬해 바로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성공했고, 박주호 역시 J리그에서 스위스 FC 바젤을 거쳐 독일 마인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같은 빅클럽을 거쳤다. 이재성이 홀슈타인에서 유럽 경력을 시작하는 것도 이런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웃 나라 일본은 한국보다 선수들의 유럽진출이 더 활성화되어 있다. 최근 이재성과 자주 비교 대상이 되고있는 이누이 다카시는 J리그에서 뛰다가 독일 2부리그 보쿰에 입단하여 유럽무대에 진출했다. 보쿰이 이듬해 1부 승격에는 실패했지만 다카시는 실력을 인정받아 프랑크푸르트-스페인 에이바르 등을 거치며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았고 현재는 스페인 레알 베티스에서 뛰고 있다. 그는 지난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일본의 16강진출에 기여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축구의 젊은 스타급 선수들 사이에서는 이런 도전정신이 약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축구는 지난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과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통하여 많은 젊은 유망주들이 병역혜택을 얻었다. 병역이란 제약으로 인해 어린 선수들이 일찌감치 해외무대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한국축구로서는 큰 혜택이었다.
하지만 이들중 이미 대회전부터 유럽에서 뛰고있던 선수들을 제외하고 유럽에 도전한 선수는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대부분은 오히려 병역혜택을 받은 이후 커리어의 하향세를 보이며 유럽에서 버티지 못하고 국내무대로 돌아왔다.
1~2년 전 한국축구를 강타했던 '중국화' 괴담이라든가, 유망주들의 J리그 유출에 대한 우려 등은 너무 이른 나이에 축구를 통하여 부와 명예를 맛본 젊은 한국 선수들이 도전정신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는 현상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보여준다.
물론 한국의 모든 선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며 이재성이나 권창훈처럼 도전정신을 지닌 선수들은 존재한다. 안정된 환경을 포기하고 유럽의 중소리그나 하부리그에서 낮은 자세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패기는 단순히 결과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박수받아야할 모습이다. 이들의 성공여부는 앞으로 유럽에 대한 꿈을 간직하고 있는 K리거들에게도 좋은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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