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박지성 아니면 상상 못 할 그림이... 월드컵 중계 3인 3색

[러시아 월드컵] 이영표·안정환 등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영웅들, 각기 다른 매력 보여줘

18.06.25 19:45최종업데이트18.06.25 19:45
원고료로 응원
월드컵은 기본적으로 각 나라 축구협회의 경쟁이지만 월드컵을 중계하는 각 방송국들에게도 매우 치열한 '경쟁의 장'이다. 특히 한국의 성적이 좋을 경우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광고수익 및 부수적인 효과는 상당히 높다.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SBS가 독점 중계권을 따내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한국이 최초의 원정 16강을 달성하면서 결과적으로 SBS는 큰 이득을 봤다.

사실 월드컵은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중계하더라도 현지의 중계화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각 방송국들이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화면은 늘 비슷할 수밖에 없다. 가끔 시청자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색다른 장면이 나오지만 이는 방송국의 중계기술이 아니라 개최국이나 FIFA의 중계기술이 발전한 것이다. 국내 방송국에서는 중계석에 카메라를 설치해 중계진의 표정을 담는데 그마저도 경기 중에는 제대로 활용하기 힘들다.

따라서 방송국의 개성을 살리면서 월드컵 중계를 가장 특별하게 할 수 있는 요소는 역시 차별화된 '중계팀'이다. 선수뿐 아니라 해설위원으로서도 한국축구에 한 획을 그은 차범근 해설위원이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을 끝으로 잠정 은퇴(?)를 선언한 가운데 지상파 3사의 해설위원은 '2002 월드컵 영웅'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각 방송국 입장에선 치열하고 예민한 전쟁터지만 축구팬들에게 각 방송사의 차별화된 중계는 월드컵을 즐기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요소다.

[KBS] '문어영표'의 예리한 해설은 러시아에서도 계속된다

 이광용 KBS 아나운서(왼쪽)와 이영표 KBS 축구 해설위원
이광용 KBS 아나운서(왼쪽)와 이영표 KBS 축구 해설위원KBS 제공

KBS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초롱이' 이영표를 메인 해설위원으로 영입했다. 선수로서의 경력은 나무랄 데 없지만 은퇴 후 대중들에게 입담을 과시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기대치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영표는 당시 스페인의 몰락을 정확히 예측하고 날카롭고 예리한 분석을 통해 '문어영표'라는 별명을 얻으며 KBS의 시청률 1위를 이끌었다. 한국축구는 실패했지만 KBS는 이영표로 인해 웃을 수 있었다.

이영표는 브라질 월드컵 이후에도 주요 국제대회마다 KBS의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약했고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도 KBS의 메인 해설위원으로 나섰다. KBS는 월드컵 개막 전 '볼쇼이영표쇼'라는 축구 예능 프로그램을 특별 편성해 월드컵을 적극 홍보하기도 했다. 여기에 부상으로 아쉽게 이번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이근호(울산 현대)가 특별 해설위원으로 합류하면서 현역 선수의 시각에서 보는 다양한 정보와 어색한 연기(?)로 신선한 재미를 주고 있다.

이미 해설위원으로 한 차례 월드컵을 경험했던 이영표는 이번 대회에서도 촌철살인의 입담으로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영표 해설위원은 스웨덴전에서 90분 내내 체력과 스피드, 그리고 뒷공간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은 '유효슈팅 0개'라는 결과처럼 만족스러운 경기 내용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영표 해설위원은 "선수들이 마음의 준비는 충분한데 체력적인 준비는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멕시코전에서도 이영표 해설위원의 '어록행진'은 계속됐다. 이영표 해설위원은 멕시코전을 앞두고 "국가대표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실수'가 아니라 '실수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라며 자신감을 강조했다. 경기 후 많은 논란이 된 장현수(도쿄FC)의 태클 장면에서는 "저 상황은 크로스나 슈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좁혀 주는 것이 최선의 수비"라며 "선수 개인의 판단은 존중하지만 지금은 태클을 하지 말았어야 할 장면이었다"라고 일침했다.

축구팬들에게 이영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포르투갈전 박지성의 골과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안정환의 골든골을 어시스트해준 장면이 상징처럼 새겨져 있다. 하지만 이영표는 PSV 아인트호벤과 토트넘을 거치며 네덜란드리그와 프리미어리그에서 이름을 떨쳤던 측면 수비수 출신이다. 독일전에서도 한국팀이 독일에 끌려가는 경기를 할 확률이 높은 만큼 수비수의 시각에서 냉철하고 예리한 해설을 듣고 싶다면 이영표가 마이크를 잡는 KBS를 선택할 것을 추천한다.

[MBC] '프로 예능인' 안정환이 '판타지 스타' 축구인으로 돌아가는 시간

 MBC 러시아 월드컵 중계 해설을 맡은 안정환 해설위원과 김정근 아나운서, 서형욱 해설위원.
MBC 러시아 월드컵 중계 해설을 맡은 안정환 해설위원과 김정근 아나운서, 서형욱 해설위원.MBC

MBC는 지난 4년 동안 월드컵 중계를 준비하면서 '본의 아니게' 커다란 수확이 있었다. 브라질 월드컵 때만 해도 은퇴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초보 방송인에 불과하던 안정환 해설위원이 4년 만에 강호동, 서장훈과 함께 가장 성공한 '운동 선수 출신 예능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물론 브라질 월드컵 당시에도 2002 월드컵의 영웅으로 시청자들에게 호응이 높았지만 현재의 인지도와 친근감은 4년 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높아졌다.

MBC는 프리랜서 캐스터 김성주 대신 김정근 아나운서를 메인 캐스터로 내세웠고 '한국 최초의 비선수 출신 해설위원' 서형욱이 안정환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안정환 해설위원은 러시아와 사우디의 개막전을 중계하면서 "시청률 잘 나와봐야 방송국만 좋겠지만"이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나도 승부욕이 있기 때문에 시청률 꼴등은 하고 싶지 않다"며 각오를 다졌다.

안정환은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짜릿한 장면으로 꼽히는 2002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 골든골을 포함해 월드컵 본선에서만 3골을 기록한 스트라이커 출신이다. 따라서 수비수 출신의 이영표와는 달리 공격수의 시선에서 경기를 보고 해설하는 경우가 많다. 안정환 해설위원은 멕시코전에서 경기 초반부터 "비신사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지저분한 경기로 멕시코를 괴롭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멕시코전에서 나온 두 차례의 실점 장면에서도 두 해설위원은 차이가 있었다. '수비수라면 이런 식의 방어를 해야 했다'며 수비수의 입장에서 설명을 한 이영표 해설위원과 달리 안정환 해설위원은 "문전 앞에서 슛을 하기 전에 들어오는 수비수의 태클은 공격수들이 가장 기다리는 장면"이라며 "태클은 무책임한 회피일 수 있습니다"라는 말로 공격수의 입장에서 한국 수비진의 무모한 태클 타이밍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은퇴 후 현장에서 떨어져 있던 시간은 제법 길었지만 안정환 해설위원은 3사 해설위원 중 유일하게 국내 지도자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어 전문성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풍부한 방송 경력을 통해 나오는 화려한 입담 역시 단연 발군이다. 전반 3분 만에 콜롬비아 선수의 퇴장과 함께 선취골을 얻어 낸 일본에 "이게 웬 떡입니까"라는 과감한 '드립'을 날릴 수 있는 해설위원은 안정환이 유일하다. 많은 경우 MBC의 시청률이 유난히 높게 나오는 이유다.

[SBS] 21세기 한국 축구 영웅 박지성의 해설을 들을 수 있는 기회

 SBS 러시아 월드컵 중계를 통해 축구 해설가로 데뷔한 박지성(오른쪽)과 배성재 캐스터.
SBS 러시아 월드컵 중계를 통해 축구 해설가로 데뷔한 박지성(오른쪽)과 배성재 캐스터. SBS/연합뉴스

차범근 해설위원의 은퇴로 새 메인 해설위원을 구해야 했던 SBS는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뜻밖의 '거물'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21세기 한국축구 최고의 영웅 박지성이었다. SBS는 박지성을 해설위원으로 영입하기 위해 박지성과 김민지 전 아나운서의 '오작교' 역할을 했던 배성재 아나운서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삼고초려를 했다(박지성 역시 SBS에 'K리그 위주의 축구 관련 프로그램을 신설해 달라고 협상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박지성은 2014년 아인트호벤에서 현역 생활을 마감한 후 스포츠 매니지먼트와 스포츠 커뮤니케이션학, 스포츠 국제법 석사과정을 수료하며 축구 행정가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난해 11월에는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이라는 직책도 맡았다. 그런 박지성에게 해설위원은 다소 낯선 자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박지성은 '훈련 기간'(?) 없이 곧바로 월드컵 본선무대의 메인 해설위원으로 투입됐다.

박지성 해설위원에 관한 초반 반응 중에서는 썩 좋지 못한 평가도 있다. 특히 현역 시절 인터뷰를 할 때처럼 '지나치게 정석에 가까운 해설을 하려 한다'는 비판도 있었고 발성에 대한 호불호도 엇갈렸다. 월드컵 3회 연속 중계를 포함해 스포츠 중계에 있어선 '국내 일인자로 꼽히는 배성재 캐스터에게 너무 의존하려 한다'는 지적도 간혹 있었다(실제로 배성재 캐스터와 박지성 해설위원은 사적인 자리에서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한다).

하지만 박지성 해설위원에게는 다른 방송국에서 감히 넘볼 수 없는 특별한 장점이 있다. 바로 세계적인 명문클럽 맨유에서 7년 동안 활약하며 얻은 국제적인 명성이다. 프랑스 대표팀의 윙백이었던 파트리스 에브라와 단독 대담을 하고 한국과의 경기 하루 전날 동료들과 훈련을 하던 멕시코의 스트라이커 하비에르 에르난데스가 훈련 도중 박지성에게 다가와 포옹을 하는 장면은 박지성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이다.

박지성은 중계 중에도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으로서의 직책을 잊지 않았다. 박지성은 멕시코전이 끝난 후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이것이 한국 축구의 수준이다"라며 "축구인들이 힘을 합쳐서 뭔가를 바꾸지 않는다면 4년마다 같은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는 진심 어린 충고를 했다. 무엇보다 KBS와 MBC의 전속 해설위원인 이영표, 안정환과 달리 영국에서 생활하는 박지성의 해설을 같은 대회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자주 오지 않을 수도 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2018 러시아 월드컵 시청률 전쟁 이영표 안정환 박지성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