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영자는 뒷걸음질을 친다. 겁에 질린 영자에게 남자는 점점 더 보폭을 넓혀 다가온다. 작은 방 구석에 발꿈치가 닿자 영자는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 그리고 그 날. 스무 살 남짓한 영자의 인생은 그녀의 작은 발 아래로 추락한다.
1975년 개봉한 <영자의 전성시대>는 시골에서 올라와 부잣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던 영자가 일하던 집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여공, 버스 차장 등을 전전하다가 환락가의 작부로 추락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는다. 당시 엄청난 흥행몰이로 한국영화사에서는 상징적인 작품이 되었지만,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강간의 묘사다. 당시 검열과 사회적 환경을 고려했을 때 강간이라는 소재의 선택 자체도 놀라운 데다가 영화는 매우 파격적인 방법으로 이를 묘사한다.
예를 들어, 영자가 주인집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부분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내려다보는 로우 앵글의 시점 쇼트(POV: point of view)로 디테일 하게 묘사된다. 이 시퀀스에 대해서 두 가지 지적 또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시퀀스가 택하는 '문제적' 시점이다. 2분가량의 강간 시퀀스는 가해자의 시점 안에 가두어진 프레임 안에서의 영자의 클로즈업과 남자가 영자에게 하는 행위를 옆에서 관찰 하는 시선으로 채워진다. 문제적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는 강간의 묘사가 오롯이 가해자의 시선과 강간을 지켜보는 3인칭의 시선 그리고 피해자의 분열된 육체의 클로즈업으로만 채워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가해자와 이를 지켜보는 시선, 즉 (관음증적) 쾌락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이는 재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