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제가 만든 얼음에서 금메달이 나온다니, 평생의 영광"

[평창인을 만나다⑦] 한국 첫 아이스메이커 조경인 매니저, 그가 말하는 썰매의 'A to Z'

18.02.02 16:06최종업데이트18.02.02 16:06
원고료로 응원
1988 서울 하계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동계스포츠는 대부분 비인기종목으로 그동안 음지에 가려져 있던 분야였습니다. 평창을 앞두고 동계스포츠 현장에서 내일의 희망을 키워가는 지도자, 관계자 등을 만났습니다. - 기자 말

 평창 동계올림픽 썰매(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경기가 열릴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 전경.
평창 동계올림픽 썰매(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경기가 열릴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 전경.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열흘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 한국은 평창에서 또 하나의 역사가 쓰일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 주인공은 썰매다. 최근 '스켈레톤 간판' 윤성빈(23·강원도청)이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과 세계선수권 등에서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평창 금메달 후보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올 시즌에도 월드컵에서 '강적'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를 5승 2패로 압도하고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이러한 영광 뒤에는 아이스메이커(Ice Maker)라는 특별한 인력이 숨어있다. 2km 가량 되는 썰매 경기장의 얼음을 모두 수작업으로 관리하며 A부터 Z까지 책임지는 얼음의 정석이다. 평창의 트랙을 책임지고 한국 썰매 사상 올림픽 첫 금메달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는 아이스메이커 조경인 매니저(26). 그를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에서 만났다.

얼음의 중심, 아이스메이커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에서 작업하고 있는 조경인 아이스메이커 매니저. (조경인 매니저 본인 제공)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에서 작업하고 있는 조경인 아이스메이커 매니저. (조경인 매니저 본인 제공)조경인

아이스메이커는 썰매 경기장에서 핵심 인력이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들이 있기에 썰매 경기가 존재하고 운영된다고 할 정도다. 한국은 이번 동계올림픽으로 평창에 사상 첫 썰매 경기장을 갖게 됐다.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가 생기기 전 한국에는 썰매와 관련한 어떠한 인력도 장비도 갖춰지지 않은 그야말로 '황무지'였다. 선수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스타트 훈련을 하고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가야만 했던 일화는 이제는 너무나 유명하다.

평창을 앞두고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와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등 관련 부처들은 썰매 경기장에 필요한 아이스메이커 인력을 모집했다. 그리고 캐나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 썰매 관련 전문 인력을 많이 보유한 동계올림픽 강국들로부터 기술 인력을 초빙해 아이스메이커를 양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스메이커는 썰매경기(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가 열리는 슬라이딩 센터 약 1.8km의 얼음을 모두 관리하는 직업을 뜻합니다. 주 업무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선수들의 훈련과 대회 전 냉각 파이프가 매설된 트랙의 콘크리트에 물을 뿌려 4~5cm 두께의 얼음을 만드는 '초기 제빙작업', 둘째 충분한 두께의 얼음을 제작한 후 스크래퍼라는 칼날의 각도를 조절해 썰매의 안전한 주행을 위해 얼음을 깎아 모양을 만드는 '스크래핑 작업', 셋째 훈련이나 경기 전 썰매 주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트랙 위의 눈이나 얼음 등 이물질을 청소하고 호스를 이용해 물을 뿌리는 '청소작업', 넷째 썰매 주행 후 손상이 있는 구역의 얼음을 건축에서 미장하듯이 얼음 슬러시를 만들어 손칼이나 삽으로 손상된 얼음을 메우는 '슬러싱 작업'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국내에 아이스메이커는 조 매니저를 비롯해 총 6명. 평창을 계기로 국내에 첫 썰매경기장이 생긴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스메이커는 이들이 한국 역사상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조 매니저는 "각자의 출신 지역, 배경, 나이, 관심사, 성격까지 천차만별이지만 '올림픽 성공개최'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몸은 힘들지만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대회 기간에는 해외 트랙 전문가들이 방한해 이들과 함께 하지만, 그 외 기간은 모두 이들 6명이 알펜시아 트랙을 책임지고 있다.

이들의 일과는 매일 스케줄에 따라 다르지만, 그 옆에는 항상 얼음이 따라다닌다. 출퇴근지는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다.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훈련 스케줄이나 대회 일정에 맞춰 저희 일과가 정해집니다. 국가대표 훈련이 가장 자주 있는데 이 경우에는 출근 후 트랙 출발 지점부터 종료 지점까지 트랙을 걸으며 정비가 필요한 부분을 파악하고 회의를 통해 각자 구역별로 필요한 장비를 챙겨 작업 영역을 나눕니다.

훈련시간 30분 전부터 트랙 상단부와 하단부로 청소 조를 나눠 빗자루, 삽, 송풍기를 이용해 트랙 위 이물질을 청소하고 호스를 코너별로 위치한 수전(water hydrant)에 연결해 얼음 위에 물을 뿌려 대회와 동일한 수준의 얼음 상태를 선수들에게 제공합니다. 훈련 종료 후에는 스크래핑 및 슬러싱 작업으로 손상된 얼음을 복구하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일과를 마칩니다."

황무지에서 꽃 피운 '배움의 열정'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에서 작업하고 있는 아이스메이커들의 모습. (조경인 매니저 본인 제공)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에서 작업하고 있는 아이스메이커들의 모습. (조경인 매니저 본인 제공)조경인

조 매니저는 2016년 9월부터 아이스메이커라는 명함을 갖게 됐다. 그는 대학 시절 국제스포츠학을 전공해 스포츠계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스포츠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뛰며 자신만의 기술을 터득하고 싶었던 그는 우연히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의 구인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입문 후 첫 단계는 IBSF(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와 FIL(국제루지연맹)의 경기장 사전승인심사를 대비해 프랑스에서 온 아이스메이커 10명과 협업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얼음 위에서 썰매 주행라인이 어딘지, 초기제빙작업 때 물은 어느 방향으로 뿌려야 하는지, 얼음의 모양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등 모두 영어로 소통하며 배워야 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단연 언어였죠. 프랑스 국가 특성상 사람들이 우리나라만큼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나 욕심이 없기에, 영어가 되는 기술자들이 당연히 많이 없었고 손짓 발짓으로 소통해야만 했어요.

평창은 새로 만들어졌고 한국에는 아이스메이커 자체가 없기 때문에, 정말 밑바닥에서 시작했습니다. 국제연맹의 사전승인 전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죠. 제빙을 위해 햇빛을 차단하는 것조차 미흡한 점 투성이었습니다. 지구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날씨 변수가 항상 존재했죠."

날씨는 아이스메이커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한 일등 공신(?)이었다. 조 매니저는 날씨 때문에 수없이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한 달 사이에 몸무게가 5kg이나 빠졌다며 웃었다. 해외 아이스메이커들도 시즌과 비시즌 사이에 체중이 10kg 가량 늘었다 줄었다 하는 기이한 일을 겪는다며, 기본적인 체력은 물론 육체 활동에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날씨가 정말 애를 많이 먹였습니다. 이번 시즌의 경우에는 국가대표팀 요청으로 작년 9월 중순부터 제빙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경기장이 한국에서 가장 추운 대관령에 있지만, 9월에는 한낮 기온이 영상 20도까지 올라가 얼음 얼리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외부와 온도 차 때문에 냉동 플랜트를 풀가동해도 얼음에 성에가 항상 1cm 이상 두께로 올라왔어요. 냉장고의 냉동실에 서리가 끼는 원리처럼요.

트랙의 얼음 상단부는 제대로 얼어붙지 못해 그대로 녹아 흘러내렸고, 그 물이 성에에 스며들고, 또 슬러시처럼 달라붙는 등 상황이 반복됐죠. 결국, 성에를 스크래퍼로 깎아내는 과정을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빙상경기장의 아이스링크는 정빙차로 한 바퀴 돌고 마무리하는 것과 달리 슬라이딩센터에선 전부 수작업으로 이뤄지기에 체력 소모가 정말 상당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시작한 아이스메이커. 해외 곳곳에서 기술 인력이 파견을 왔지만 각 나라의 트랙마다 고유의 특징이 있기에 모든 것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조 매니저는 "해외에서 배운 기술을 평창에서 이에 맞게 변형,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하나의 예시를 들었다.

"썰매 경기 중 4인승 봅슬레이는 선수와 썰매의 무게를 합쳐 630kg까지 나갈 수 있어 시속 120km 이상으로 주행하면, 썰매의 날이 얼음에 부딪혀 파손되는 얼음 양이 상당합니다. 경기를 계속 진행하면 특정 부위에만 얼음이 파이고 완벽한 모양이 나오지 않으면 이에 대해 보수작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이 작업에서 트랙별로 차이가 있는데, 슬러싱 작업 진행하거나 스크래핑 작업을 먼저 진행하고 슬러싱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기술자마다 모두 다르죠. 정답은 없습니다."

아이스메이커, 내겐 무용담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에서 국내외 아이스메이커들. (조경인 매니저 본인 제공)
평창 동계올림픽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에서 국내외 아이스메이커들. (조경인 매니저 본인 제공)조경인

얼음을 다루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조 매니저를 비롯한 한국 아이스메이커는 지난 2년여 동안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 수십 개의 나라로 파견을 나가며 기술 습득에 전념했다. 첫 해외 파견으로 프랑스를 다녀온 후 대회운영 노하우를 터득하기 위해 미국의 북아메리카컵 등 수 많은 대회 현장에서도 구슬땀을 흘렸다. 그는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으로 '체계화'를 꼽았다.

"외국 경기장은 역사가 오래돼 업무 체계화가 상당히 뚜렷합니다. 일례로 업무 시작 전 트랙 크루가 다 같이 모여 당일 업무에 대해 회의를 하고 분업을 합니다. 또한, 기술자들이 일인 다역으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프랑스 라 플라뉴 트랙의 경우,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때부터 지금까지 시즌별로 트랙에 매시간 햇빛이 들어오는 구역을 파악합니다. 그리고 이를 데이터화 해 해당 날짜와 시간에 따라 햇빛을 막아 얼음을 보호하는 차광막 개폐, 냉동 플랜트 온도 조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들이 2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 흔적을 크게 느꼈습니다."

현재 아이스메이커들은 이미 작년 10월에 제빙을 완료한 후 올림픽까지 최상의 빙질을 유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목표로 하던 평창 대회가 코앞에 다가오자 그는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경기장 주변 도로도 제대로 포장되어 있지 않아 '과연 여기서 올림픽을 하긴 하나'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며 회상했다. 그랬던 평창은 이제는 도로 교통은 물론 길거리 상점 간판까지 새로이 단장해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손님 채비를 마쳤다.

배움과 스포츠에 대한 열정만으로 조금은 무모하게 뛰어든 아이스메이커라는 세계. 조 매니저는 자신이 만든 트랙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나올 것을 생각하니 영광이라며 소박한 소망을 밝혔다.

"평창의 주변 시설도 모두 갖춰지고 오륜마크가 새겨진 현수막들이 트랙에 붙여지고 나니 이제 현실이라는 것이 실감 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와 동료 아이스메이커들이 다 같이 만든 얼음 위에서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주행해 승부를 겨룬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기쁘고 영광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이 세 종목의 모든 선수가 출발부터 도착까지 무사히 주행을 마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국내 최초로 열리는 동계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아이스메이커라는 생소한 역할로 참가했던 것은, 평생 자부심을 느낄 만한 저의 무용담이자 자산입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평창동계올림픽 썰매 알펜시아 윤성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