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침묵> 스틸 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최민식에 방점이 찍힌 리메이크 <침묵>은 이런 원작의 얼개를 그대로 따른다. 차기 대통령 선출에 간여할 정도의 재계의 실력자 임태산 회장(최민식 분)이 그 주인공이다. 한 음식점에서 정가의 뒷거래를 하는 한편, 그런 그가 마음을 쏟는 또 하나의 '사업'이 있으니 바로 늙으막한 그에게 찾아온 로맨스이다. 그 주인공은 여가수 '유나', 하지만 그 '로맨스 그레이'는 '엄마를 닮지 않았다'며 대뜸 눈물을 보이는 그의 외동딸 미라로 인해 난관을 겪는다. 하지만 그에게 모처럼 찾아온 사랑은 쉬이 식지 않는다.
잠시 딸 미라를 만나고 오겠다는 유나가 살해당한 채 발견되고, 역시나 유력한 용의자로 미라가 체포된 가운데, 매번 법망을 빠져나가는 임태산을 벼르던 동성식(박해준 분)이 재빨리 현장을 선점하고, 아버지와의 면회조차 마다하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유일하게 딸과 소통했던 예전 과외 교사 출신의 최희정(박신혜 분)가 변호사로 선임된다. 원작 <침묵의 목격자>가 검사 역인 곽부성에게 방점을 찍은 반면, 한국으로 온 <침묵>은 동일한 플롯과 반전을 취하면서도, 출연진의 비중에서 재벌 회장이자 아버지 역의 최민식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 압도적인 비중은 왜 정지우 감독이 이 작품을 리메이크했는가를 설명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압도적인 존재감은 <침묵>의 노선을 미묘하게 만든다.
영화는 서막에서부터, 엔딩까지 줄곧 최민식이 분한 임태산의 '순애보'에 집중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순애보'는 '반전'을 품은 스릴러 장르로서의 영화의 매무새를 혼란스럽게 한다. 아버지의 애인을 살해한 범죄 현장에서 잡힌 재벌가의 딸, 그 범죄를 증명하고자 하는 법정 스릴러의 뼈대를 가진 영화는, 그 사건의 배후에서 암약하는 아버지의 존재감과 충돌한다. <침묵>처럼 뜻밖의 반전이 중요한 영화로 <유주얼 서스펙트>가 있다. 이 영화 역시 줄곧 진행되던 사건의 진실이 마지막 장면에서 뜻밖의 반전을 통해 새롭게 해석되며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던 작품이다.
<침묵> 역시 동일한 반전의 트릭과 해석이 필요한 영화인데, 문제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경우 유일한 생존자의 진술과 그 진술을 듣는 수사관 데이브가 영화 본 무대의 주요 등장인물이었다면, <침묵>의 경우 본 무대가 법정이며, 그 법정에서 주인공은 검사와 변호사라는 점에서, 법정과 법정 밖의 임태산의 존재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그리고 원작처럼, 최후의 한 방이 돼야 할 임태산은 줄곧 영화에서 지분을 가지고 활약을 하며,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 '돈이 진실'인 역할에 충실한다.
문제는 이런 임태산의 활약이 그리고 그 역할을 분한 최민식의 존재감이 두드러질수록 정작 이 영화의 본 게임이 되어야 할 법정의 두 주인공 검사와 변호사의 역할이 미흡해진다는 것이다. 이 운용의 묘에서, <침묵>은 아쉬움을 남긴다. 마지막 히든카드를 너무 손쉽게 넘겨주며, 스릴러로서의 매력을 주저앉혀 버리며 임태산의 순애보를 설명하는데 진력한다.
비극적인 아재들의 순애보